공모주의 배신…IPO 대어 잇단 급락에 공모철회∙상장연기 속출

수요예측·청약 부진···이미 상장된 종목도 주가 ‘뚝’

‘공모주의 배신.’

2021년부터 국내 주식시장에 공모주 열풍을 불러온 기업공개(IPO) 대어들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심정이 불편할 것 같다. 기대와 달리 대다수 종목 주가가 상장 당일에 비해 20% 넘게 하락하거나 공모가를 밑돌고 있어서다. 2022년 들어서는 IPO를 철회하는 업체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수요예측과 일반청약 등 IPO 전 과정에 걸쳐 투자심리가 얼어붙으면서, 증권가에서는 올 상반기까지 상장 철회나 연기 사례가 이어질 거란 분석이 나온다.

기업공개(IPO) 대어들의 주가가 하락하고 상장 철회 및 연기하는 기업이 속출하면서 IPO 시장에 연일 찬바람이 불고 있다. /픽사베이

◇찬바람 부는 IPO 시장, 대어들의 추락

3월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3월 18일 상장 1년째를 맞은 SK바이오사이언스 주가는 상장 첫날 종가 대비 약 12% 하락한 가운데 장을 마쳤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상장 첫날 ‘따상(시초가가 공모가 대비 2배로 형성된 뒤 상한가)’에 성공하며 16만9000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코로나19 델타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한 2021년 8월엔 36만2000원까지 주가가 치솟았지만 지금은 14만원대까지 떨어진 상태다.

2021년 5월에 상장한 SK아이이테크놀로지와 2021년 8월에 상장한 카카오뱅크의 주가도 첫날 종가 대비 각각 24.92%, 24.36% 하락했다. 2021년 11월 상장한 카카오페이와 2022년 1월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 역시 주가가 각각 24.61%, 24.36% 빠지는 등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2021년 8월 상장한 롯데렌탈과 크래프톤의 현재 주가도 공모가보다 낮다.

IPO 대어의 추락은 최근 증시가 부진한 영향이 크다. 2021년 3300선을 넘어섰던 코스피 지수는 이후 꾸준히 하락하며 2650선까지 밀렸다.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인상 기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같은 겹친 악재들로 지수가 하락하면서 IPO 대어들의 주가도 맥을 못 춘 것이다. 

상장 전후 한껏 부풀었던 투자자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점도 주가 부진의 큰 이유 가운데 하나다. 크래프톤의 경우 중국 게임규제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수익감소 불안감이 커지고, 단일 지식재산권(IP)에 기대는 사업구조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플랫폼사업 규제, 예상을 밑도는 여신 점유율과 실적, 경영진의 대규모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행사 등이 악재로 작용하며 카카오페이와 함께 주가가 부진한 상황이다.

2022년 1월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은 IPO대어로 꼽혔지만 상장 첫날 이후 주가가 20% 이상 하락한 상황이다. /LG에너지솔루션

기관 수요예측 경쟁률 2023대 1, 청약증거금 114조원이라는 기록을 세운 LG에너지솔루션 역시 공매도와 니켈 등 원자재 가격 급등 등의 영향으로 주가가 기대치를 밑돌고 있다. 

이를 두고 상장 주관사가 설정하는 공모가 밴드가 높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주관사가 희망 공모범위를 산정한 뒤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공모가를 결정하는 방식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증거금 예치 없이 우선 주문을 넣을 수 있는 기관들에 의해 ‘뻥튀기 주문’이 발생하며 희망밴드 상단 혹은 그 이상으로 공모가가 산정되는 사례가 다수다.

공모가가 공모주의 시장가격보다 높을 때에는 공모주를 배정받은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게 된다. 이후 투자자들은 공모주 투자에 대한 위험을 높게 평가하고 참여를 꺼릴 수 있는데, 이러한 투자자들의 분위기 속에서 IPO 시장도 움츠러드는 분위기다.

◇투자심리 위축에 상장 철회 잇따라

최근에는 수요예측 부진으로 상장 계획을 철회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지난 3월 16일 약물 설계 전문업체 보로노이는 공모 철회신고서를 금융위원회에 제출했다. 보로노이는 최근 주식시장 급락 등에 따라 회사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운 측면 등 제반 여건을 고려해 공동 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과의 협의를 통해 잔여 일정을 취소하고 철회신고서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보로노이는 3월 14~15일 이틀간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희망 공모가는 5만~6만5000원, 이에 따른 시가총액은 6667억~8667억원 규모로 수요예측이 기대치에 미달하면서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국내 유니콘 특례 1호로 상장을 추진하던 약물 설계 전문업체 보로노이는 최근 수요 예측 부진으로 기업공개(IPO)를 철회했다. /보로노이

보로노이는 2021년 4월 코스닥에 신설된 시장평가 우수 기업 특례(유니콘 특례) 제도를 활용해 상장예비심사 승인을 받았다. 유니콘 특례는 시가총액 5000억원 이상으로 예상되는 기업의 경우 전문평가기관 한 곳에서 A등급 이상을 받으면 코스닥 상장예심 청구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다. 회사는 향후 시장 안정화 시점을 고려해 상장에 재도전할 계획이다.

수요예측 부진으로 보로노이처럼 공모 단계에서 일정을 철회한 기업은 2022년 들어 벌써 세 곳이나 생번째다.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올해 IPO 대어로 꼽힌 현대엔지니어링이 지난 1월 수요예측 흥행 실패로 상장일정을 철회했다.  현대엔지니어링 공모가 희망밴드는 5만7900~7만5700원, 예상 시가총액은 4조6300억~6조500억원 규모였다. 업계에서는 상장 후 몸값을 10조원대까지 전망했다.

하지만 국내외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수요예측에서 100대 1 수준의 저조한 경쟁률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대형주 공모주 중 가장 낮은 수요예측 경쟁률을 기록한 크래프톤의 243대 1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2월엔 신재생 에너지솔루션 기업 대명에너지가 철회신고서를 제출했다. 대명에너지 역시 공모가 확정에 필요한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부진한 결과가 나와 다음 시기를 기다리게 됐다. 대명에너지의 공모 희망 밴드는 2만5000~2만9000원으로, 이에 따른 시가총액은 4443억~5153억원 정도였다. 이밖에 퓨쳐메디신과 미코세라믹스, 한국의약연구소, 파인메딕스 등이 줄줄이 IPO 일정을 철회했다.

IPO 일정을 차일피일 미루는 기업들도 있다. 2022년 상반기 중 상장하겠다고 했던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아직 예비심사를 청구하지 않으며 상장 시기를 6월 이후로 연기했다. 신선식품 판매 플랫폼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컬리도 당초 계획과 달리 이달 말에야 상장 심사를 청구할 예정이다.

증권가에서는 국내외 증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공모주 투자심리는 당분간 반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금리 인상 기조로 국내∙외 증시가 위축되고 있어 IPO를 시도하는 기업의 수가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나승두 SK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며 수익률과 밸류에이션을 끌어올렸던 IPO 시장인 만큼, 시장의 긴축 가능성이 높아진 요즘엔 보다 보수적인 접근이 적절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2021년 국내 IPO 시장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공모금액은 전년(4조5426억원) 대비 333.9% 늘어난 19조7084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IPO를 시행한 기업 수는 전년(70개)보다 27.1% 증가한 89개로 나타났다.

글 jobsN 강정미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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