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안 부럽네”…기술 인재 유출에 정년 없애는 회사

반도체 학과부터 정년 폐지까지
인재 육성부터 정년 이후도 책임진다는데
인력 유출 막으려는 기업들의 고군분투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들이 우수 기술 인재들의 정년(停年)을 없애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대개 자격이나 면허가 있는 전문직이 정년 없이 일하는데, 이들을 전문직처럼 대우해줌으로써 인재 유출을 막겠다는 취지입니다.

2022년 2월 13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우수 인력이 정년 이후에도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시니어 트랙’ 제도가 올해부터 시행됩니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는 자격 요건, 처우 같은 구체적 시행 지침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기술 인재의 축적된 경험을 존중하는 취지라는 것이죠.

이보다 앞서 SK하이닉스가 정년인 60세가 지나도 계속 근무할 수 있는 ‘기술 전문가 제도(HE·Honored Engineer)’를 2018년 12월부터 도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2020년 1호 전문가를 배출한 바 있습니다.

2022년 신년사에서 박정호 부회장이 직접 “훌륭한 기술 인재에게 정년이 없는 회사를 만들겠다”고도 선언했지요. 우수 엔지니어를 2017년 설립한 사내 대학에서 전문 교수로 영입해 일하도록 하는 계획도 있습니다. 



SK하이닉스의 정년 없는 기술 전문가 제도. /SK하이닉스 뉴스룸

국내 유수 기업들이 앞다투어 ‘우수 인재 정년 폐지’를 선언한 배경은 무엇일까요? 현재 반도체 개발자 구인난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난이 계속되는 가운데 반도체 관련 인력의 몸값은 높아지고 있죠.

최근까지는 주로 이들 기술 인재를 스카우트(영입) 하기 위한 ‘쩐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특히 삼성전자가 인재 영입에 총력을 기울이며 반도체 업계 전반에 긴장감을 불어 일으켰지요. 2021년 하반기 경력직 채용 규모가 ‘역대급’이었다는 후문도 있었습니다.

특히 2021년 말 삼성전자가 직원 전원에게 월급 2개월분을 특별격려금으로 나눠준 데 이어 2022년 1월말 3개월치 월급에 해당하는 추가 보너스를 지급했다고 알려져 외신이 주목하기도 했습니다.

삼성전자가 한국거래소에 제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삼성전자 직원 10만9490명의 2020년 평균 연봉은 1억2700만원으로 5년 전과 비교해 26% 증가했습니다. 이 중에서도 반도체 부문 기술 인력들의 평균 연봉은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 성과 체계도 이에 뒤지지 않습니다. 2022년 1월말 SK하이닉스는 전년도 실적 성과급으로 전 직원에게 월급 10개월분의 특별 상여금을 지급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에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한국 반도체 기업의 직원 보상 체계는 만성적인 기술자 부족 때문”이라며 “특히 천문학적인 연봉을 제시하는 중국 기업과의 스카우트 전쟁에서 인재를 지키려면 처우 개선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적확한 분석입니다. 덩치 큰 중국 회사가 국내 인재를 스카우트할 때 제시되는 조건을 보면 사실 어마어마합니다. 특히 반도체 같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 그 시도가 자못 파격적이죠. 2020년 9월 국내 한 채용 공고 사이트에 중국 기업이 올린 구인 공고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잡코리아에 올라와 화제가 됐던 중국 근무 D램 설계자 모집 공고. /인터넷 캡처

‘30나노 이하급 D램 반도체 설계’ 경력이 2년 이상인 이에게 연봉은 최고 조건으로 대우하며, 주택을 제공하고, 자녀를 국제학교까지 보내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삼성전자(S)와 SK하이닉스(S) 근무자를 우대한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유령회사까지 세워 국내 핵심 기술을 빼가는 사례도 빈번하다는 게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와일드 카드로 ‘정년 폐지’를 꺼낸 것이지요.

업계에선 두 기업의 인사 제도가 국내 우수 인력의 해외 유출을 막는 동시에, 청년 인재가 반도체 산업으로 유입되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반도체, 배터리, 전자제품 등 경쟁이 치열한 부문일수록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경험을 쌓은 인재가 중요합니다. 이들이 자국에서 전문가로 대우 받고 정년 보장 이상의 혜택을 줌으로써 명예와 안정성을 택하도록 명분을 주는 셈이지요.

이로써 우리나라 반도체 인력은 대학 교육부터 정년 이후까지 기업이 책임지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현재 삼성전자는 성균관대·연세대 등에, SK하이닉스는 고려대에 반도체 관련 계약학과를 설치해 인재 육성을 지원하고 있죠. 학생들은 졸업 후 해당 회사에서 일정 기간 일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 더불어 이제 정년 이후 후배들을 양성하는 일자리까지 보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기업만의 노력으로 첨단 분야 발전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반도체 공급 대란을 겪은 주요 국가들은 저마다 반도체 분야를 지원하기 위한 긴급예산을 편성하고 투자를 추진 중입니다. 미국이 2021년 6월 2500억달러(약 300조9000억원), EU(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430억유로(약 58조9000억원)를 반도체 산업에 지원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자기 나라 안에 반도체 공장을 신설하거나 증설할 때 투자액의 절반을 정부가 지원하기로 했고요.

우리나라 2022년 총 예산은 600조원 규모입니다. 이 금액의 절반을 미국은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2022년 총 예산 중 미래 산업 전략 R&D(연구·개발) 투자에 총 6조2000억원, 인공지능·소프트웨어 등 혁신형 인재양성에 총 2조원이 쓰인다고 합니다.

☞브레인 드레인(brain drain·두뇌 유출)
국가의 유효한 고급 인적 자원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상태를 일컫습니다. 국내 전문인력이 자신의 전문성과 관련없는 일을 하며 제대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내적 유출’과, 선진국 등 해외로 이주하는 ‘외적 유출’로 나뉩니다. 반도체 업계에서 인재가 해외로 이탈하는 현상은 외적 유출에 해당하겠지요.

우리나라는  특히 자연과학 계통에서 이러한 유출 현상이 심했습니다. 정부 출연 특수재단법인 등을 설립해 인재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며 자연과학 계통 유출이 전보다 줄었다고는 합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첨단 산업 분야에서 인재 유출 고민이 이어지고 있지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에 따르면 한국의 두뇌 유출 지수는 4.81(2019년 기준)로, 세계 30위였습니다. 미국(6.86), 독일(6.06), 이스라엘(6.22)보다 낮았는데, 지수가 낮을수록 인재 유출이 심하다는 뜻입니다.

글 jobsN 유소연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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