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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차 수어통역사 권동호씨

TV 뉴스 화면을 보면 오른쪽 하단 작은 원에 수어를 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국가기관의 브리핑에도 옆에서 수어를 하는 사람이 서있다. 모두 수어통역사가 하는 일이다. 최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고, 몇 년 전 한국수화언어법이 통과되면서 수어통역사의 활동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수어통역사로 16년째 일하고 있는 권동호씨는 각종 방송과 함께 정부청사에서 진행되는 브리핑을 수어로 통역하는 일을 맡고 있다. 막 뉴스 생방송을 마친 그를 만나 수어통역사의 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옆에서 수어 통역을 하고 있는 권동호 통역사. 정부는 지난 2020년 2월 4일부터 코로나19 정례브리핑에 수어 통역사를 배치했다. /본인 제공

– 수어통역사가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소개 부탁드린다.

“청각 장애가 있어 소리를 듣지 못하는 농인들이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보이는 언어’를 수어라고 해요. 농인들에게 중간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계자 역할을 하는 게 수어통역사입니다. 선천적으로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은 한국어보다 수어를 먼저 배워요. 그들에게는 수어가 언어인 셈이죠. 농인들의 언어로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통역사라는 명칭을 사용합니다.”

– 수어통역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주변에 농인이 있어서 수어를 배우게 됐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 같은 경우는 가족이나 주변에 농인이 없었어요. 수어를 처음 접하게 된 건 대학교 동아리 시절입니다. 동아리 활동을 하고 싶어서 알아보다가 수어 동아리를 알게 됐어요.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하다 보니 수어가 제게 잘 맞았어요. 무언가를 전달하는 매개체가 된다는 점이 매력적이기도 했고 보람도 느꼈죠. 그래서 대학교 졸업할 때쯤, 전공보다는 수어 통역을 전문으로 하는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16년 차라고. 수어통역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전에는 수어통역사가 한국농아인협회에서 주관하는 민간 자격증이었다가, 2006년도에 보건복지부 공인 국가공인자격증으로 인증받았어요. 사람들이 수어통역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국가공인자격증이 된 첫해에 합격해서 수어통역사로 일하기 시작해서 올해로 16년 차가 됐어요. 수어통역사 자격시험은 1년에 한 번 있어요.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에 합격하고 마지막으로 연수 과정을 거치면 수어통역사로 일할 수 있습니다.”

대학교 동아리 시절 수어를 처음 접한 권동호씨. /본인 제공

– 수어통역사가 되면 주로 어디서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예전에는 수어통역사로서 취직할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었어요. 지역마다 위치한 농아인협회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죠. 협회에서 일하면서 수어 통역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찾아가서 통역 일을 했습니다. 저도 실무를 배우기 위해 처음 5년간 농아인협회에서 일했어요. 그러다가 2016년도에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된 이후로 수어통역사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방송국마다 방송 프로그램에서 수어를 사용하는 비율을 명시하게 해서 수어통역의 비율이 늘어났고, 세미나 학회나 국가기관에서 실시하는 공공 행사에는 반드시 수어통역을 해야 해요. 수어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기업에서 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지금은 프리랜서로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방송국과 정부청사에서 주로 일하고 있어요. 수어통역사 일을 시작하면서 목표 중 하나가 방송 화면 속 작은 원에 들어가는 것이었어요. 방송은 주로 뉴스 프로그램에서 수어통역을 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에서도 일하는데, 정부에서는 17개 부처의 모든 브리핑에 수어통역사를 세우기로 했어요. 그래서 올해 11명의 수어통역사를 위촉 형태로 공개 채용했는데, 거기에 합격해서 정부 브리핑에서도 수어 통역을 하고 있습니다.”

방송국과 정부청사에서 주로 수어 통역을 하고 있는 권동호씨. 그의 목표 중 하나는 방송 화면 속 작은 원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본인 제공

– 수어의 원리가 궁금하다. 단어 하나하나를 다 번역하는 형태인가.

“수어는 국어와 구성이 다른 언어에요. 국어와는 어순이 다르고 조사와 어미가 없죠. 그래서 단어 순서 그대로 통역하는 게 아니라, 문장을 해석해서 수어로 의역을 해줘야 해요. 수어만의 표현으로 바꾸는 거죠. 전문용어 같은 경우는 예시를 설명하는 경우도 많아요. 예를 들어 코로를 주제로 하는 브리핑에서 ‘아나플라시스’라는 단어가 나오면 호흡 곤란 같은 대표 증상을 예시로 설명해 줘요. 수어는 손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도 중요한 요소에요. 국어에 억양이 있는 것처럼, 수어는 표정을 억양같이 활용하죠. 안타까운 표정이나 즐거운 표정같이 문장의 뜻에 맞는 표정을 지어줍니다. 수어를 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좀 과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수어는 눈으로 보는 언어이기 때문에 표정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 말이 빠를 경우 의역해서 통역하기가 힘들 텐데,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수어통역을 하기 전에 미리 원고를 암기해요. 즉흥적으로 하는 것도 있지만, 원고를 미리 보고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해야 통역에 실수가 없어요. 특히 방송 같은 경우는 수어통역을 기다려주지 않고 동시로 진행되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유퀴즈)’에 출연한 권동호씨. /본인 제공

– 수어는 나라마다 다른지.

“수어를 배우면 해외에서도 통하냐는 질문을 가끔 받아요. 그런데 나라마다 언어가 있듯이 나라마다 수어가 달라요. 방탄소년단(BTS)의 안무 중간중간에 나왔던 수어는 국제수화에요. 국제적으로 공용하기로 약속된 수화죠. 국제수화 중에는 한국 수어와 의미가 똑같은 것도 있어요. 예를 들어, ‘기쁘다’는 한국 수어와 똑같아요.”

– 전공이 무엇이었나. 원래 꿈이 수어통역사였는지.

“대학교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했어요. 아이들을 너무 좋아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을 꿈꾸며 유아교육과에 갔죠. 그런데 실습을 할 때 꿈과 현실은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제가 아이들을 다루고 이끄는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죠. 그래서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에 유아교육과 수어통역 중에 어느 길로 갈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좀 더 즐겁고 제게 맞는 일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수어통역을 하고 있는 권동호씨의 모습. /jobsN

– 수어통역의 매력은 어디서 느꼈는지.

“수어는 마치 손으로 그리는 그림 같아요. 수어에는 어떤 상황을 설명할 때 유머러스하고 즐겁게 표현하는 부분이 있어요. 농인들의 대화를 보면 굉장히 유쾌한 요소가 많아요. 언어유희가 많죠. 정치 분야에 대한 설명에서도 원고와 같은 딱딱한 문체가 아닌 유머러스한 풍자가 많아요. 수어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수어를 하다 보면 손과 표정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표정이 풍부해져요. 감정에 솔직한 언어입니다.”

– 취미가 무엇인가.

“조용한 성격이라 집에 있는 걸 좋아해요. 최근에는 고양이에 관심이 많아졌는데, 집 근처 공원에서 구조한 유기묘 두 마리를 집에서 키우고 있어요. 다양한 맥주를 찾아서 맛보는 것도 소소한 취미 중 하나입니다.”

권동호씨는 유기묘 2마리와 함께 지내고 있다. /본인 제공

– 수어통역사로서 바램이 있다면.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자주 등장하면서 수어통역사가 주목받는 일이 있는데, 수어가 널리 사용된다는 의미에서는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해요. 사실 수어의 주체는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이에요. 주목받아야 할 사람들도 수어를 필요로 하는 농인들이죠. 저는 수어통역사로서 소통의 창구가 되고 싶어요. 농인들이 저로 인해 적극적으로 사회에 나오는 계기가 되고 싶습니다.”

글·사진 jobsN 오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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