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공식 이용해 만든 아이스크림으로 대박났죠

카이스트 나와 대기업 입사했지만 돌연 사표

공학 지식 더해 만든 아이스크림으로 창업

버터감자·고수·깻잎 등 이색 아이스크림 판매

마포구 염리동의 아이스크림 가게 ‘녹기 전에’./ 박정수

서울 마포구 염리동에는 보통의 아이스크림 집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이 가게에선 버터감자, 고수, 깻잎, 동치미, 와사비, 게살 등 아이스크림과는 도통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들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다. 장난으로 만든 것 같지만, 아니다. 손님들이 대표가 싫어하는 재료를 강제로 사다 줘 울며 겨자 먹기로 만든 메뉴는 있을지언정 무엇하나 장난으로 만든 메뉴는 없다. 심지어 실험실에서나 쓰일 것 같은 일상성과는 동떨어진 행렬과 화학식을 이용해 과학적(?)으로 만들어 낸 레시피다. 이런 걸 누가 사 먹겠나 싶지만 놀랍게도 장사가 잘된다. 그것도 꽤. TV에도 출연했다.

이 가게는 메뉴만 특이한 게 아니다. 운영도 특이하다. 매년 겨울마다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석 달까지 자체 겨울방학을 가진다. 건물주 아들인가 싶지만, 아니란다. 가게 문을 닫든 말든 매달 꼬박꼬박 나가는 월세는 자신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포기한다. 아이스크림 집이지만 가끔은 다코야끼나 빵도 판다. 아이스크림과는 관계없어 보이는 사생대회나 악필 대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상도 있는데 시상 방식이 좀 특이하다. 아무튼, 어쨌든, 남들과는 조금 다른 아이스크림 집 ‘녹기 전에’의 박정수(34) 대표를 인터뷰했다.

◇고교 조기졸업→카이스트→대기업 입사한 엘리트가 사표를 던진 이유

박 대표는 고교 시절부터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 보통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고등학교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한 뒤 대전의 ICU(한국정보통신대학교)로 진학했다. ICU는 전 과목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며 1년 3학기제로 3년 만에 학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학교였다. 그의 전공은 전기전자였다. 그가 졸업을 1년여쯤 남긴 시점에서 학교가 카이스트와 통합해 그는 카이스트 졸업생이 됐다.

아이스크림 이미지 사진들./ 녹기 전에 인스타그램

그가 학교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은 국내 과학산업의 발전 대신 그의 아이스크림 사업의 초석인 아이스크림 제조법 개발에 이바지했다. “레시피를 짤 때 행렬로 계산을 해 만드는 등 대학에서 배운 것들을 잘 써먹고 있습니다. 화학 관련된 것들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졸업 후 그는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사표를 내고 회사를 나왔다. “보통 회사에서 자기 삶의 중요한 부분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나온다는, 많은 회사원에게 용기를 주는 스토리가 많지만 저는 20대에 이미 제가 회사에 종속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조금 어이없게 들리실 순 있지만, 대기업에 간 이유도 대중적인 시선에서 ‘좋은 회사에 다니다 나왔다’는 프레임을 하나 만들어보자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돈 많이 주는 회사에 다니다가 그만두고 창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요.

“부모님은 일단 걱정은 되지만 해보라고 하셨어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좋은 회사에 다니다 나왔다는 훈장이 집에서도 먹힌 거죠. ‘얘는 그래도 뭘 해도 되겠다, 다 생각이 있겠지’라는 콩깍지를 부모님께 씌운 겁니다. 사실 별생각 없었는데 말이죠. (웃음) 친구들 가운데선, 특히 직장인 친구들은 재미있게도 우려보다는 뭐랄까, 각자 개인적인 위기감이 느껴졌습니다. 엇비슷한 회사원이었던 제가 나가서 뭘 한다고 하면 그것의 전망이 어떻든 간에 일견 용기 있어 보이고 자기 자신에 대입해서 자신의 안일함을 반성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왼쪽부터 레몬딜버터, 오레오라즈베리치즈케이크, 피자두 아이스크림./ 녹기 전에 인스타그램

-많은 창업 아이템 가운데 아이스크림 집을 차린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요.

“5년에 한 번씩 직업을 바꾸는 게 목표였습니다. 첫 타자로 제가 예전부터 변함없이 좋아했던 것, 일이 힘들어도 본능적으로 다시 좋아질 수 있는 것을 하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스크림이었죠. 아이스크림은 또 제 인생 최대 화두인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시계’ 이외의 유일한 것이기도 했고요. 아이스크림은 녹으니까요. 이 현상이 꼭 제게 늘 열심히 살라는 조언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먹는 것도 좋아했죠. 한 예로 전 군대에서 휴가를 나오면 늘 집에 와서 냉동실부터 열었어요. 항상 어머니께서 바닐라 아이스크림 두 통씩을 냉동실에 넣어두셨죠. 전 그 자리에서 그걸 다 먹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유명한 아이스크림 매장에 점심을 먹으러 가기도 했어요. 쿠키앤크림 맛으로만 하프갤런 사이즈(1237g)의 통에 담아 먹는다든지 그랬죠. 가끔 사람들도 이렇게 먹지 않나요.”

아이스크림 재료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 한 공부의 흔적들./ SBS ‘생방송투데이’ 방송화면

그는 2016년 퇴사 후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4개월간 일했다. 현장의 분위기를 익힌 그는 레시피 개발에도 4개월여를 보냈다. 그는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뒤지는 대신 원서를 보며 아이스크림에 들어가는 재료의 특성을 먼저 공부했다. 국내에는 참고할 만큼 깊이 있는 자료가 없어 원서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아이스크림은 재료의 특성이나 화학적 특징을 익히지 않으면 절대 만들 수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식품공학적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거죠. 아이스크림은 음식이 아닙니다. 아이스크림은 상온에서 존재할 수 없는 저온의 분자들이 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물질입니다 여러 특징을 지닌 분자들이 적절한 온도에서 그 질감을 유지하기 위해선 분자들끼리의 역학 관계가 적당해야 합니다. 유명 매장의 레시피가 있더라도 재료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레시피에 나온 맛밖에 낼 수 없기 때문에 녹기 전에처럼 다양한 맛을 구현해내기 힘듭니다.”

서울 종로구 익선동에 처음 문을 연 ‘녹기 전에’ 매장과 매장 인테리어 작업 중인 박정수 대표./ 박정수

아이스크림 연구 당시 그는 카페로 출근해 아침부터 새벽까지 공부했다. 집에 상업용 아이스크림 기계를 사놓고 아이스크림을 만들어보는 일도 병행했다. 그리고 퇴사한 지 딱 1년 만인 2017년 3월 종로구 익선동에 아이스크림 집을 열었다. 당시 그의 매장은 동네 유일의 수제 아이스크림 집이었다. 매출은 초반부터 탄탄대로를 걸었다. 방송사에서 나와 취재를 할 정도였다.

-우유, 초콜릿 같은 일반적인 아이스크림도 있지만 버터감자, 고수, 깻잎, 대나무 잎, 와사비, 게살, 동치미 등 특이한 아이스크림들도 눈에 띕니다. 잘 팔리는 맛이라기보다는 실험적인 맛을 추구하기 위해 만든 거라고 보면 될까요.

“감자나 고수, 깻잎 등은 꾸준히 잘 팔리는 맛입니다. 이중 게살과 동치미는 아예 만우절 때 만든 메뉴입니다. 와사비 같은 메뉴는 마니아층이 아주 탄탄합니다. 그래서 깻잎이나 감자 같은 메뉴를 두고 도전이라 하시면 저희 매장에 처음 오신 분들입니다.” (웃음)

고수와 오이로 만든 아이스크림./ 녹기 전에 인스타그램

-단골들이 강제로 대표가 싫어하는 고수, 당근, 오이 같은 재료들을 제공해서 메뉴를 만들기도 했다고 해요.

“네. 듣기만 해도 싫은 메뉴들입니다. 오이나 고수를 손질할 땐 가끔 현타(?)가 오기도 합니다. 보통 재료를 직접 가져오시기보다는 댁에서, 또는 회사에서 택배를 보내세요. 그럼 저희는 영문도 모른 채 주문한 적 없는 재료를 받게 되는 거고요. 하지만 당근으로 만든 당근치즈케이크 맛 아이스크림은 저도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가끔 이렇게 압박이 있어야 재미난 창작물도 나오는 법이겠죠.”

-현재 레시피는 몇 가지 정도나 되나요. 매주 새로운 메뉴를 만든다고 하는데 어렵진 않나요.

“지금까지 총 300여가지 정도를 만들었습니다. 매일 10가지 정도의 메뉴들을 손님들께 내놓고 있고요. 새로운 메뉴들도 계속 개발 중입니다. 이제 너무 많은 메뉴를 만들어서 새 레시피 개발 속도가 좀 더뎌질 것 같긴 하지만 워낙 새로운 걸 만드는 걸 좋아해서 일처럼 느껴지진 않습니다. 그냥 놀이 같습니다.”

창업 초기 쌀을 이용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모습./ SBS ‘생방송투데이’ 방송화면

-아이스크림 메뉴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무엇인가요. 가장 잘 팔리는 메뉴는요? 잘 팔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안 팔린 메뉴도 있었나요.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피스타치오입니다. 자주 하는 말인데, 마지막 피스타치오 한 컵은 제 것입니다. (웃음) 가장 많이 나가는 메뉴는 이천 쌀이고요. 쌀 없는 날은 ‘오늘 왜 쌀 없냐’는 말을 정말 많이 들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메뉴는 꼭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홍삼은 맛도 너무 좋고 건강에도 좋아서 인기가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처참한 성적을 기록했던 메뉴였습니다.”

-겨울방학이 있다는 게 특이합니다. 방학을 만든 이유가 있나요. 방학 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나요. 방학이라 해도 가겟세는 나갈 텐데 경영에 어려움은 없나요.

“원래는 12월부터 2월까지 석 달을 쉬었습니다만 작년과 올해 사이부터는 1월만 쉽니다. 방학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보통 조심스럽게 ‘매출이 안 나오는 달이라서 그런 거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요, 실은 겨울에 쉴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직업을 선택한 측면도 있어서 겨울에 쉬는 겁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5년에 한 번씩 직업을 바꾸려면 깊게 생각을 할 시간도 필요하거든요. 아이스크림을 하면 겨울에 쉬어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웃음) 가게 월세는 저에게 하는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겨울에 쉴 때는 네 가지를 주로 하며 지냅니다. 걷고, 책 읽고, 목욕하고, 멍하니 불을 바라봐요.”

악필대회 1등 작품과 사생대회 결과 발표문. 특이하게 1등 대신 2등에게 상품을 준다./ 녹기 전에 인스타그램

-아이스크림 가게인데 특이하게 악필대회, 사생대회를 열기도 합니다. 이런 이벤트들은 어떻게 기획하게 된 건지 배경이 궁금합니다.

“아이스크림은 커피에 비해 한 자리에서 오랜 시간 소비할 수 없는 제품입니다. 그래서 커피 시장이 넓어지고 공간 그 자체로의 가치를 인정받는 형태로까지 커피 문화가 자리 잡은 것에 비하면 아이스크림은 여전히 제품으로서만 기능하고 있죠.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체류하는 시간을 늘리고 싶었습니다. 먹으면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이벤트들을 만든 이유죠. 시상도 합니다. 투표 자체도 인스타그램을 통해 투명하게 진행하기 때문에 조작이나 몰아주기가 있을 수 없이 아주 공정합니다. 다만 상품은 항상 2등에게만 드립니다. 1등은 1등을 한 것만으로도 기쁘기 때문이죠. 아쉽지만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1등을 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 2등에게 몰아서 상품을 드립니다.”

-팝업 스토어 형태로 다코야키와 빵, 커피를 팔기도 했어요. 아이스크림 매출에 시너지를 일으키기 위한 행사일까요. 아니면 그냥 재미로 하신 걸까요.

“두 가지를 모두 노렸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한 가지만 노린 거라고도 할 수 있어요. 재미있는 일은 매출도 올려주거든요.”

-아이스크림을 직접 배달하는 ‘녹딜리버리’ 이벤트도 해요. 제주도로도 직접 배송을 갔다고요.

“네. 저희는 겨울에 서울 전역을 대상으로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아이스크림을 고객분들께 배달해드리는 이벤트를 하기도 하는데요. 제주도의 경우는 뭐랄까, 그냥 재미있어서 갔습니다. 서울에서 배달하기 가장 먼 곳인데 과연 배달이 될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주문을 주신 분도 서울에 자주 오시는 제주도 단골분이셨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배달을 갔는데 총 5시간 반 정도가 걸렸습니다. 도착해 뚜껑을 열었는데, 아주 꽁꽁 얼어있는 아이스크림을 보고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던 기억이 나네요.”

녹기 전에 박정수 대표./ 박정수

-팬들도 매우 많은 것 같아요. 이렇게 사랑받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보신 적 있나요.

“많은 분이 저희를 아껴주시는 건 저희가 반응형 매장이라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150여명이 저희 매장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 있는데요, 일명 ‘녹기 전에 주주방’입니다. 이 방을 비롯해 SNS 채널 등을 통해 저희가 반응하는 속도나 형태가 손님분들에게 인상적으로 다가간 것 같습니다. 제가 늘 바라왔던 아이스크림 매장의 형태이기도 해서 뿌듯합니다.”

-지난해 매출은 어느 정도였나요. 공개가 가능할까요.

“정확하게 공개하기는 부담스럽지만 직장인이었을 때보다는 많이 법니다. 액수를 떠나 제가 일한 만큼, 제 일로 번다는 자부심이 그 돈의 가치를 훨씬 높여줘서 만족스럽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가 있다면요.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일은 제게 여전히 재미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재작년 즈음 직업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접었습니다. 이것만 해도 되겠다, 이 업계에서 재미난 족적을 남기는 게 훨씬 의미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이제 만 5년을 채워가는 시점입니다. 새로운 5년을 준비해야 합니다. 재미난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고요, 초심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진짜 초심으로 돌아가서 늘 아이스크림에 미쳐있던 때처럼 재미나게 운영해볼 생각입니다. 올해 말쯤 매장 이전을 바탕으로 새로운 일들을 벌여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글 jobsN 고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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