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컷으로 면접보러 갔더니 사장이 “00와는..”

‘페미니즘 어떻게 생각하느냐’ 면접 사상 검증 대비한다는 취준생 “모범답안 준비하면서도 자괴”

면접을 앞두고 있는 20대 여성 권모씨는 요즘 머리 모양을 두고 고민이다. 기업문화가 보수적으로 알려진 해당 기업에서 자신의 숏컷 스타일을 부정적으로 볼까 염려가 돼서다. 권씨 친구들은 그에게 ‘가발을 쓰라’, ‘공부하는 데 방해돼서 잘랐다고 하라’고 조언했다. 권씨는 “여성이 짧은 머리를 한다고 편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만 면접장에서는 그들이 갑 아니냐”며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대책을 찾으려는 것 자체가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최근 도쿄올림픽 양궁 3관왕인 안산 선수 머리가 짧다는 등의 이유로 공격받는 일이 있었다. 이를 긴 머리를 자르고 화장을 지우며 여성에게 부과되는 전통적 미의 기준을 거부하는 ‘탈코르셋’과 연관 지어 페미니스트라고 매도하는 것이다. “머리가 짧다고 페미니스트라고 단정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지만,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비난 받을 이유는 없다”라는 게 지배적 여론이다. 영국 매체 BBC에서도 이 현상을 분석해 소개하기도 했다.

영국 BBC가 9일(현지 시간) 보도한 ‘왜 한국 여성들이 짧은 머리를 되찾으려 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 /BBC

일각에선 “금메달리스트 안산 선수로 인해 가시화됐지만 일상 곳곳에서 페미니즘 검증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면접장에서의 사상 검증이 대표적이다.

남성 이용자가 많은 게임업계에서 이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했다. 올 초 한 게임 시나리오 작가 지원자는 한 게임회사 면접에서 ‘당신이 결정권자라면 SNS에서 페미니스트라고 이슈가 된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을 게임에서 지우겠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게임업계의 페미니즘 검열에 동의하느냐고 물어본 것이다. 게임업계에서는 게임 개발에 참여하는 관계자가 여성 인권에 관한 목소리를 내면 이용자들이 해당 여성 해고를 요구하는 일이 잦다.

해당 지원자는 “조직을 위해 협업 직군의 직원을 해고할 것인지, 남의 밥줄을 쥐고 흔들어보라는 비인간적 선택을 강요했다”고 비판했다. 결국 해당 게임회사는 “실무면접 과정에서 사상검증 질문으로 불편함을 느끼게 해드려 사과한다”는 메일을 지원자에게 보냈다.

◇명백한 ‘성차별 면접’…해당 기업 불매운동도

한 기업 인사 관계자는 “어떤 제스처 하나에도 난리가 나니 회사 입장에서는 채용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지만 사상 검증성 질문으로 지원자를 가려내려 했던 기업들이 역풍을 맞기도 한다. 이를 명백한 성차별로 인식하는 여성 소비자들이 불매운동을 벌이기 때문이다.

유튜브 출연을 통해 이미지 제고를 노렸던 한 제약회사는 방송 직후 ‘성차별 면접이 이뤄졌다’는 폭로가 나오며 불매운동이 일어났다. /유튜브 캡처

동아제약은 지난해 11월 하반기 공채 1차 면접에서 여성 면접자에게 ‘군대에 가지 않았으니 월급을 적게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군대에 갈 생각이 있느냐’고 질문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해당 면접 내용이 알려지기 직전 동아제약은 인기 유튜브 프로그램 ‘네고왕’에 출연해 할인 행사까지 벌였지만 면접 내용이 알려지며 기업 이미지가 추락했다. 특히 생리대 등 여성용품을 파는 회사였기에 2030 여성 소비자의 불매운동으로까지 사태가 번졌다. 불매운동에 참여한 한 소비자는 “기업이 생각하는 고객에 여성은 없는 것이냐”며 “다수 소비자가 여성인 기업에서조차 성차별 면접이 치러진다는 데 분노했다”고 말했다.

경기 일산에 있는 한 카페에서는 숏컷에 맨얼굴을 한 여성 지원자에게 “페미니스트냐”고 물은 뒤 “페미니스트와는 결이 맞지 않아 채용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주장이 퍼지면서 역시 불매운동이 일었다. 서울 한 편의점이 아르바이트생 지원 자격에 ‘페미니스트가 아닌 자’를 명시한 사례도 있었다.

취업 정보 사이트에는 면접장에서 ‘거래처에서 성희롱을 당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 ‘강남역 살인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는 후기가 올라오곤 한다. 한 취업준비생은 “과거 면접장 성차별 질문이 면접관이 젠더 감수성 없이 뱉는 것에 가까웠다면, 요즘은 적극적으로 페미니스트를 가려내겠다고 나서는 경향이 있어 더 집요하게 느껴진다”며 “차별적 질문임을 알면서도 그들이 원하는 모범답안을 준비할 때마다 무기력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글 jobsN 유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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