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빵빵한 상선 그만두고 그린피스 배 탄 이유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 환경감시선
한국인 최초 항해사 김연식

그린피스(GREENPEACE)는 1971년 캐나다에서 시작된 국제 환경단체다. 전 세계 55개국에 지부가 있으며 기후 위기와 해양 보호 등 전 지구적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화적인 방식으로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린피스에는 3척의 배가 있다. 지구 곳곳 환경 파괴 현장을 찾아가 캠페인을 벌이고 이를 통해 세상에 문제를 알려 환경보호에 힘쓰는 환경감시선이다. 김연식(38)씨는 이 배의 일등항해사다. 그린피스 최초의 한국인 항해사로 세계 환경 문제 현장을 다닌 지 7년째. 무엇이 그를 바다로, 환경운동으로 이끌었을까. 북극에서 아마존까지, 지구를 위한 항해 중인 김연식 일등항해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린피스 환경감시선 일등항해사 김연식씨. /그린피스 제공

◇운명을 바꾼 시간

2015년 10월 그린피스 환경감시선 ‘레인보우 워리어 3호’가 한국을 방문했다. 이 배는 보름간 한국에 머물며 원전 반대 캠페인과 시민을 만나는 오픈 보트 행사 등을 열 계획이었다. 그 기간 환경감시선에서 함께 생활하며 주방보조로 일할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는데 이때 배에 오른 사람이 김연식씨다. 해운회사 소속으로 9개월 동안 화물선에서 항해사로 일하고 돌아온 그는 3개월 휴가를 보내는 중이었다. 황금 같은 휴가 기간에 보름씩이나 집을 비우고 배에서 자원봉사를 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닐 터. 그러나 김연식씨에겐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환경 운동을 하고 싶다거나 NGO에서 일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닙니다. 저는 항해사고 항해사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의미 있게 살고 싶었어요. 환경감시선이나 병원선, 난민선, 연구선 등에서 일할 기회를 찾고 있었죠. 그러다 마침 그린피스 홈페이지에서 환경감시선이 한국에 온다는 소식과 함께 자원봉사자 모집 공고를 보게 됐어요.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주방 보조로 양파와 마늘을 까고 설거지를 하며 레인보우 워리어 3호에서 보름을 보낸 뒤 김연식씨는 자신의 일과 삶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다달이 월급이 나오는 선사의 항해사, 안정적인 직업 대신 그린피스의 항해사로 NGO에서 일하기로 한 것이다.

“그간 NGO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엄청 똑똑하고 영어도 잘하는 완벽한 사람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지레 겁먹고 꿈도 못 꾼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배에서 지내보니 그린피스 선원들은 특출 나다기보다 다들 가슴에 어떤 소명 의식을 갖고 있는 보통 사람들이었어요. 그 마음이 제게도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린피스 환경감시선 아틱 선라이즈호. /그린피스 제공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는 그린피스 홈페이지에서 정식 채용 절차대로 환경감시선 항해사로 지원했다.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어 담당자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냈다. 보름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 손편지를 써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그린피스 본부로 항공 우편도 보냈다. 그래도 답이 없어 그린피스 본부로 매일 전화를 하기에 이르렀다. 간절함에 매일 시차까지 계산해 전화했지만 채용 담당자는 매번 부재 중이었다. 암스테르담으로 날아가 본부 앞에서 노숙 시위라도 해야 하나 싶을 때쯤 그린피스 선원 채용 담당자에게서 본부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린피스는 상시 채용을 한다. 공석이 생길 때 충원하는 방식. 지원을 해도 자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마침 환경감시선 항해사 자리가 비었고 김연식씨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그동안 한국인 선원이 없었다는 점도 나라와 성비를 중요시하는 그린피스 채용에 도움이 됐다. 약간의 욕심과 과한 집착 그리고 행운이 겹치면서 그는 2015년 11월 그린피스의 정식 항해사가 됐다.

◇그린피스 항해사의 일

그가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 레인보우 워리어, 아틱 선라이즈, 에스페란자호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며 다양한 나라의 환경 문제를 만나고 이를 바꿀 캠페인을 벌인 지도 벌써 6년이 지났다. 북극이나 남극, 아마존, 솔로몬제도, 파타고니아, 세이셸 등 사람들의 발길이 닿기 힘든 곳까지 지구 곳곳을 누볐다.

북극에선 세계적 피아니스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와 빙하에서 한 피아노 연주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 현장을 담은 영상은 1500만뷰를 기록하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아마존 석유 시추 현장을 막다 브라질 정부에 잡혀가 3박4일 동안 심문을 받기도 했다 태평양 한가운데 플라스틱 쓰레기섬에서 엄청난 양의 한국 쓰레기를 발견하고 낯부끄러운 적도 있었다.

“캠페인을 하다보면 ‘내가 어떻게 이런 곳에 있을 수 있지?’ 놀랄 때가 많습니다. 남극에 가서 잠수정을 놓고 해저를 탐사하는 현장에 제가 있다니요. 그저 놀랍고 감사합니다. 때로는 환영받지 못하고 실패하는 캠페인도 있어요. 억류되거나 다칠 수도 있고요. 그러나 현장을 목격하고 알리는 일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작은 관심과 사소한 변화라도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으니까요. 책임감을 느끼고 그린피스의 의미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에요.”

북극에서 캠페인 활동 중인 그린피스 환경감시선 아틱 선라이즈호와 김연식씨./그린피스 제공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에는 30여명의 선원이 있다. 언어, 국적, 문화가 다른 20여개국의 사람들이 함께 배를 타는 일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 영어는 여전히 서툴고 음식과 환경도 낯설다. 환경감시선은 김연식씨가 타던 상선의 1/20 크기. 규모가 작고 복잡해 공동 생활에 불편한 점이 많다. 그러나 각자의 목소리를 들어주고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배우는 것도 많아졌다. 일에도 여유가 생겼다.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에선 배를 청소하거나 꾸려가는 일에는 선장까지 너나 할 것 없이 팔을 걷어붙인다. 상선 항해사일 때는 해본 적 없는 대걸레질를 하며 현타가 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무장갑 끼고 변기 청소도 곧잘 한다. 어느덧 그린피스에 일하는 게 익숙해진 모양이다. 그러나 여전히 채식은 익숙하지 않다. 그린피스 선원과 활동가 중에는 채식주의자가 많다. 채식이 환경을 보호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사흘 중 하루는 고기를 먹지 않게 됐다. 이렇게 조금씩 변화가 시작된다.

◇환경감시선 타고 한국 찾는 게 꿈

김연식씨는 최근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에서 일한 7년의 기록을 담은 책 ‘지구를 항해하는 초록 배에 탑니다’를 내놨다. 그의 두번째 책이다. 항해를 하면서 그가 꾸준히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

“배를 타고 먼 바다를 항해하다보면 내가 여기서 언제 빠져 죽어도 아무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가족, 친구, 소속 집단과 늘 떨어져 있다보니 잊혀질 것 같은 두려움이 생겨요. 잊혀지는 게 두려워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항해사로서 뿌리가 깊지 않다보니 선장이나 도선사가 되서 성공하겠다기보다 제가 재미있는 걸 찾으려고 했어요. 그런 결핍도 제가 글을 쓰게 된 이유예요.”

대학 졸업 후 신문사 기자로 일하던 김연식씨는 스물아홉 살에 항해사가 됐다.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서 해양계 학교 출신이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오션폴리텍 해기사 교육 과정을 수료했다. 중앙상선에서 5년을 일하고 일등항해사 진급을 앞둔 시점에 김연식씨는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에 올랐다.

서아프리카 콩고민주공화국의 오픈 보트 행사에서 아이들에게 환경감시선을 설명하고 있는 김연식씨. /그린피스 제공

김연식씨에겐 꿈이 있다.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을 타고 우리나라를 찾는 거다. 2016년 이후 그린피스 환경감시선은 한번도 우리나라를 찾은 적이 없다. 그린피스에는 어느덧 김연식씨를 포함해 총 4명의 한국인이 일하고 있다. 환경감시선을 타고 한국을 찾는 특별한 경험을 함께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린피스에서 일하며 김연식씨는 돈보다 시간을 벌었다. 그린피스 선원은 3개월 승선 후 휴가로 3개월을 보낸다. 1년의 반은 지구를 항해하고 나머지 반은 자신을 위해 보내는 셈이다. 2017년, 2018년 휴가에

김연식씨는 난민구조선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이번 휴가에는 제주도를 오가며 환경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린피스에서 하는 일이 의미가 없다고 느껴진다면 새로운 일에 도전하게 될 거예요. 하지만 지금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린피스 항해사로서 환경운동가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글 jobsN 강정미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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