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찍듯 ‘서울 동네 지도’ 만드는 이유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동네 탐방 과제를 받은 배우 수지. /영화 건축학개론

장소에는 이야기가 있다. 물리적 위치를 넘어 누군가의 삶과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서울은 도시 개발 과정에서 많은 변화를 경험한 도시다.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기를 여러번. 그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사라지곤 한다. 서울의 낡고 오래된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기록한 사람이 있다. 건국대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동갑내기 유혜인·조혜진(37)씨다.

이들은 서울 종로구 재동·익선동, 중구 을지로 등 주로 서울 옛 동네를 조명한다. 취미 삼아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진으로 기록하던 습관이 마침내 ‘지도’ 제작까지 이어졌다. 지역의 특성·뉴스를 분석하고, 도시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를 지도에 남긴다. 우리가 동네를 거닐면서 봤던 기억을 환기하고, 이야깃거리를 떠올리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도를 만드는 목적이다. 서울 동네 곳곳의 이야기를 지도에 녹여낸 ‘아마추어 서울’ 유혜인, 조예진 공동대표를 화상통화로 만났다.

아마추어 서울 유혜인(왼쪽) 대표와 조예진 대표. /아마추어 서울 제공

-‘아마추어 서울’을 소개해주세요.

(유 대표) “아마추어 서울은 지도라는 매체를 통해 서울 곳곳의 장소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그룹이에요. 2009년 지도 1호 제작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10호를 발행했어요.”

-‘아마추어 서울’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조 대표) “같은 학부 동기 4명이 함께 시작했어요. 당시 저희는 서울 오래된 동네를 돌아다니며 사진찍고 소리를 기록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서울인데 서울 같지 않은 동네들을 주로 다녔어요. 편의점이 아니라 동네 슈퍼가 있고, 떡볶이 집이 있는 골목 같은 곳이요. 같은 동네라도 다른 계절, 다른 시간대에 방문하면 느낌이 다르거든요. 그런 변화를 기록하는 게 취미였어요. 그러다 작은 공모 사업에 아마추어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지원한 적이 있어요. 그때 본격적으로 지도 1호를 제작하게 됐죠.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활동하고 있어요. 네명이서 활동하다 한 명은 유학을 떠나고 다른 한 명은 부산으로 가면서 현재 두 명이서 운영 중이에요.”

-이름을 ‘아마추어 서울’로 지은 이유도 궁금해요.

(유 대표) “아마추어(amateur) 어원은 라틴어로 아마토르(amator)라고 해요. 무언가를 애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죠. 저희는 도시나 건축 관련 전문가는 아니지만, 서울을 애정하는 마음으로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아마추어 서울로 지었어요.”

(조 대표) “저희는 각자 1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어요. 아마추어 서울은 사이드 프로젝트에요. 본업이 아니기 때문에 아마추어라고 표현한 것도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서울 애호가라는 데 의미를 두고 활동하고 있어요.”

-아마추어 서울 지도가 우리가 아는 일반 지도와 차이가 있나요?

(유 대표) “일반 지도는 객관적인 지리정보를 기록하는 반면 저희 지도는 주관적인 지도에요. 호마다 색깔이 달라요. 객관적 지리정보를 담은 호도 있고, 서울 내 작은 서점 안을 지도로 다룬 적도 있어요. 지리 정보를 이야기로 엮어내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5호 ‘김경란의 성수동’ 같은 경우는 성수동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건축가와 협업해 성수동 지도를 만들었어요. 6호 ‘백태종의 초동’은 을지로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사장님과의 인터뷰 내용을 담았어요.”

넓은 공간 범위를 다룬 5호 ‘김경란의 성수동’ 지도/아마추어 서울 제공

좁은 공간 범위를 다룬 7호 ‘조은영의 장사동’. /아마추어 서울 제공

(조 대표) “관광형 투어 가이드맵 같은 지역 정보라기보다 지역에서 만들어지고 흩어지는 이야기들에 초점을 맞췄어요. 누군가 기록하거나 들려주지 않으면 그냥 모르고 지나갈 만한 이야기들이요. 1호 지도는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서울 북촌 골목의 부동산 지도를 그대로 스캔해 인쇄물에 담았어요. 넓은 공간을 고스란히 지도에 담은거에요. 그런데 해를 거듭하면서 지도에 대한 개념을 확장해보기로 했어요. 좁은 공간 범위로도 지도를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거죠. 그렇게 제작한 지도가 세운상가의 다섯평짜리 기술 서적 서점 지도에요. 이 공간이 사라지기 전에 이 모습 그대로 기록하고 싶어 제작한 지도에요. 공간을 육면체로 펼친 모습을 지도에 담았어요. 모든 공간을 디지털 카메라로 촘촘하게 찍어 콜라주했죠. 일반적인 지도는 저희가 만든 1호나 5호 지도처럼 공간 범위가 넓지만, 저희는 작은 공간을 지도로 만들기도 해요.”

-현재까지 만든 지도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지도가 있나요?

9호 크리스하마모토씨의 일일 지도. /아마추어 서울 제공

(유 대표) “9호 지도인데요. ‘크리스하마모토씨의 일일’이라는 지도에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어요. 종로와 을지로 일대를 걸어 다니며 관찰한 이동형 상점(노점상)에 관해 기록한 지도에요. 이동형 상점이 이동하는 코스를 따라 지도를 기록했어요. 크리스하마모토라는 외국인 친구가 서울에 여행을 와서 이동형 상점을 하루동안 쫓아가보는 여행기에요. 외국인 친구가 관광한다는 상황 설정에 맞춰 구글 맵이 띄워져 있는 모습으로 지역을 표기했어요. 지리 정보는 핸드폰 구글맵 이미지에 담았습니다.

이 지도는 매일 을지로를 지하철로 출근하면서 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했어요. 자주 다니는 지하철 출구 앞에는 늘 밤빵을 굽는 노점 가게가 있어요. 또 맞은 편에는 매주 목요일마다 과일을 파는 과일트럭이 와요. 점심시간에는 쌍화차를 파는 카트가 와요. 이동형 상점을 운영하는 사장님들은 을지로 안에서 본인만의 루트가 있어요. 아침에는 광장시장 쪽에 있다가 어느 때가 되면 을지로에 머물렀다가, 또 다른 곳으로 넘어가죠. 이런 루트를 저희가 쫓아다니면서 기록하고 지도로 만들었어요. 이동형 상점 이야기를 통해 동네 분위기와 지리 정보를 전달한 거에요.”

(조 대표) “지금은 이런 이동형 상점도 많이 사라졌어요. 을지로에서 특징적으로 볼 수 있는 카트나 손수레 노점을 중심으로 담았던 호 였습니다.”

-지도가 영어로 써있는 부분도 있네요?

(유 대표) “박람회를 나가면 외국인들이 지도에 관심을 많이 보였어요. 새로운 서울의 모습을 담아서 그런 것 같아요. 때문에 지도나 가이드북은 한영문으로 공동표기하고 있어요.”

-지도 제작 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세요.

(조 대표) “각자 경험한 서울 동네 이야기를 자주 나눠요. 서대문구에 있는 유진상가를 갔더니 그곳은 밤에 시장은 문닫고 포장마차는 문을 열더라 하는 이야기죠.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제가 잡히면 현장 답사를 다녀요. 처음엔 관찰 위주였다면 다음에는 그 지역에 오랫 동안 살고 계신 분들을 만나 인터뷰를 해요. 리서치가 끝나면 내용을 지면에 어떻게 옮길지 고민합니다. 글을 쓰고 이미지를 정리해요. 또 콘셉트에 맞게 종이 선택도 다르게 해요. 지도를 유광지에 만들지, 노르스름한 종이에 만들지 주제에 따라 다르죠. 예를 들어 ‘크리스 하마모토씨의 일일’ 지도는 한 면은 모조지(일반 종이 복사 용지), 다른 한 면은 고광택 코팅 종이로 만들었어요. 카트 이미지가 실린 지면은 광택이 없는 반면 핸드폰 구글 맵 이미지가 실린 지면은 유광지에요. 핸드폰 화면을 보면 광택이 있잖아요. 지면에서도 그런 느낌이 나도록 고광택 종이를 사용했어요.”

아마추어 서울 지도 제작 과정. /아마추어 서울 제공

-호마다 종이 재질을 다르게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요?

(조 대표) “매번 똑같은 종이를 사용하는 건 재미 없다고 생각해요. 또 지도를 보시는 분들이 저희가 경험한 것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종이 앞 뒤 면이 대비가 있으면 질감이나 색감을 통해 장면을 상상해 볼 수 있거든요. 지도를 봤을 때 시각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자는 의도를 담았어요.”

-지도 한 호를 제작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유 대표) “지도마다 차이가 있지만 최소 3개월 정도 걸려요. 일반적으로 6개월~1년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2009년 아마추어 서울을 시작할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서울은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유 대표) “3호 지도에 기록했던 서대문과 독립문 지역이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크게 들어섰지만 예전에는 여러 주택으로 이루어진 동네였거든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크게 바뀌었어요.”

(조 대표) “저희가 다룬 지역 중에 바뀌지 않고 그 때 그 모습 그대로인 곳은 없어요. 제로에요. 오래되고 낡았다고 생각하면 새롭게 대체되고 개발돼요. 바뀌면 결국 다른 지역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모습일 때가 많아요.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을 계속 반복한다는 점에서 서울은 변함이 없는 것 같아요.”

-독자들에게 반응이 좋았던 프로젝트는 무엇이었나요?

(유 대표) “서울 노트가 인기가 많았어요. 서울의 기억할 만한 장소를 모아 가벼운 수첩으로 제작했어요. 10년 넘게 작업을 해오면서 지도에 미처 담지 못했던 장소들을 가볍게 수첩에 담았어요. 박람회에서 재밌다고 피드백을 많이 받았던 제품이에요.”

(조 대표) “지도에는 한번에 많은 이미지와 텍스트가 담겨요. 그런데 수첩에 내용을 가볍게 옮기니 소비자가 내용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열람도 편하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서울 노트. /아마추어 서울 제공

서울 노트. /아마추어 서울 제공

-수익구조가 궁금해요.

(유 대표) “지도는 1만2000원에 판매하고 있어요. 매출은 어느 정도 있지만, 판매를 목적으로 지도를 제작하는 것은 아니에요. 저희가 좋아서 진행하는 일이니까요. 매출이 발생하더라도 수익은 대부분 다음 호를 제작하기 위한 비용으로 비축합니다.”

(조 대표) “수익은 오히려 다른 루트에서 발생해요. 저희가 만든 지도를 보고 일을 의뢰하는 분들이 많아요. 인쇄물 관련해 워크숍이나 전시 활동을 하는 기회가 생긴다거나, 초등학교에서 동네 관련 놀이지도·예술교육을 할 기회가 생겼어요. 아마추어 서울을 통해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어요.”

-지도를 만들면서 어려웠던 경험이 있나요? 반대로 보람있었던 경험은요?

(유 대표) “지도를 만드는 지역을 여러 시간대, 여러 계절 동안 관찰해요. 오랜 시간을 들이는 일인 만큼 즐거우면서도 힘들 때도 물론 있어요. 상황에 따라 해당 지역에 민감한 이슈가 있으면 인터뷰가 어려울 때도 많죠.”

(조 대표) “어렵고 힘들었던 부분은 굉장히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딱 꼬집어 기억이 나진 않아요. 정말 좋아서 자의적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듣는게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아마추어 서울 활동의 꽃이에요. 평소 절대 이야기를 나눌 것 같지 않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가 되는 과정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또 본업을 할 수 있는 에너지와 원동력을 얻어가기도 하고요.

박람회에 가면 아마추어 서울 팬분들을 많이 만나요. 초기부터 계속 구매하셨던 분들을 만나면 신기하고 뿌듯하죠. 나중에 30~40호 쌓여있을 아마추어 서울 지도를 상상하면서 매 해를 꾸려나가는 것 같아요.”

-만든 지도로 전시회도 연다고요.

(조 대표) “올해 세화미술관의 도시 관련 전시에 초청을 받았어요. 저희가 현재까지 만든 지도를 모두 열람할 수 있도록 전시했어요. 10년 동안 활동하면서 수집했던 물건들도 함께 전시하고 있어요.”

(유 대표) “수집한 물건은 이를테면 이동형 상점을 쫓으면서 열쇠카트에서 구매한 오래된 열쇠같은 것이에요. 시계골목을 돌아다니며 수집한 낡은 시계 등 시간의 흔적이 담긴 다양한 물건이 있어요.”

(조 대표) “세운기술서점 같은 경우는 이제 사라졌어요. 사장님이 가게를 완전히 정리하기 전에 저희를 부르셨죠. 남아있는 물건을 수집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셨어요. 50년 넘은 서점인데 그곳에서 사장님이 기록했던 장부와 1970년대 책 봉투 등을 소장하고 있어요. 전시장에 물건을 수집한 이유와 물건에 담긴 이야기, 출처를 함께 적어뒀어요.”

-앞으로 계획과 목표가 있나요?

(조 대표) “2009년부터 차곡차곡 만들어온 저희 지도가 앞으로도 계속 발행되는게 가장 큰 꿈이에요. 무언가를 오랫동안 지속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럼에도 이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머니가 되서까지 계속 하고 싶어요.”

(유 대표) “좋아서 하는 일은 힘들어도 직업성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수익도 크지 않은 이 프로젝트를 왜 이렇게 오래하냐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이 일을 비롯해 새로운 기회와 인연이 많이 생기고 있어요. 앞으로도 다양한 동네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꾸준히 지도를 발행하려고 합니다.”

글 jobsN 박혜원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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