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평짜리 숙직실에 신혼살림 차렸다는 29살 대표가 매출 150배 올린 비결

가업을 물려받아 CEO 자리에 오른 20대 대표를 떠올리면 ‘금수저’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요. 회사가 어려워지던 시기에 경영을 이어받은 28살 대표는 금수저라고 하기 어려운 3평 숙직실에서 대표직을 수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양산업이라고 판단해서 가업 물려받는 것 자체를 반대한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니던 직장을 포기하고 경영난을 겪고 있는 회사를 떠안았다는 주인공은 지평주조의 3대 사장 김기환 대표입니다.

일제강점기였던 1925년 고 이종환 선생이 운영을 시작한 양평의 작은 양조장은 일본군의 민속주 말살 정책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살아남았고, 해방 후 고 김교십 대표가 인수해서 현 ‘지평주조’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지평주조의 1대 사장인 김교십 전 대표가 바로 현재 김기환 대표의 할아버지이며 2대 사장 김동교 전 대표는 아들에게 사업을 물려주지 않으려 했던 2대 사장님이지요.


반대하는 아버지를 설득해서 주조사업에 뛰어든 열혈 3대 사장 김기환 대표는 사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직업 밝히기를 꺼렸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양조장에 대해 막연히 ‘술과 관련된 무엇이다’라는 생각만 있었기에 술집을 하는 것과 차이를 느끼지 못해서인데요. 그러면서도 아버지를 따라 양조장에 가면 당시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큰 발효실 항아리들에 압도되는 강렬한 경험을 하면서 양조장과 발효실에 대한 나름의 애착이 형성되었다고.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했음에도 김기환 대표는 회사경영에 대해서는 고려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브랜딩이나 마케팅 쪽에 관심이 높아서 졸업 직후 한 홍보대행사에 입사해서 근무했는데요. 그즈음 막걸리 시장은 2000년대 초반 소위 ‘막걸리 열풍’이 불던 시기를 지나 차츰 소비량이 감소하기 시작했고 일본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됐던 막걸리 수출도 정체를 면치 못했습니다.

양평에 위치한 작은 양조장 ‘지평주조’ 역시 막걸리 시장 침체의 타격을 크게 받았습니다. 대표를 제외하고 단 두 명의 직원이 일하는 지평양조장은 매출이 연 2억 내외였는데요. 막걸리 시장과 함께 점차 어려워지는 양조장 상황을 지켜보면서 김기환 대표는 오히려 ‘가업을 이어봐야겠다’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인이 된 후 다양한 종류와 브랜드의 막걸리를 마셔보면서 ‘우리 막걸리만 한 맛은 없네’라고 자부심을 가져온 김 대표 입장에서 이처럼 훌륭한 제품이 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나 아쉬웠던 것.


tvN 유퀴즈온더블럭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설득해서 2009년 3대 사장이 된 김기환 대표는 가장 먼저 막걸리의 ‘균질한 맛’을 키워드로 삼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지평막걸리는 막걸리를 담가온 ‘마스터’들의 손맛에 의존하는 경향이 높아서 늘 동일한 맛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었는데, 김 대표는 이로 인해 막걸리의 맛과 품질이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상품적 가치, 브랜드적 가치가 떨어지는 단점을 보완하고자 나섰습니다.

tvN 유퀴즈온더블럭
사장으로 취임한 해 가을에 결혼을 한 김 대표는 신혼살림을 아예 양조장 내부 3평짜리 숙직실에 마련했습니다. 새벽과 한밤중엔 밀입국 온도를 맞추고 낮에는 양평과 여주로 배달을 다니면서 김 대표는 아내가 아닌 막걸리와 결혼을 한 것처럼 살았습니다.

2014 travie
덕분에 김 대표가 어린 시절 삼촌, 아저씨하고 부르면서 따르던 직원들 역시 김기환 대표를 사장으로 인정했습니다. 50대 후반, 60대인 두 직원은 막걸리 마스터이면서 서로를 “이 씨~”, “사장님~”이라고 부르며 일하는 가족 같은 사이였는데요. 김 대표는 균질한 맛을 유지해서 막걸리의 상품력을 높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두 직원에게도 ‘공장장님’과 ‘주임님’이라는 직책을 부여함으로써 책임감을 주고 회사 내 직급체계를 만들고자 시도했습니다.

2014중앙일보 / 2016한국농어민신문
양조장 옆에 위치한 철물점의 매출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은 매출을 기록하던 ‘지평주조’는 김기환 대표가 만들어준 기업가치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기업으로 거듭나기 시작했습니다. 숙직실에 신혼살림을 차린 김 대표가 밤낮으로 공정을 관찰하면서 원재료 품질, 밀입국 과정, 위생상태 등을 모두 기록하고 매달린 끝에 균질한 제품 생산을 위한 시스템을 갖추었지요. 덕분에 막걸리의 인기가 하한가에 들어선 2010년대 초반 지평막걸리는 나홀로 성장에 성공해서 연 매출 2억 원에서 월 매출 1억 원까지 오름세를 탈 수 있었습니다.

현재 복원공사 중인 지평양조장
더불어 광고 회사 출신인 김 대표는 본격 마케팅까지 담당했습니다. 일제 치하의 억압에서 유일하게 명맥을 이어온 지평양조장이 한국전쟁 당시 UN사령본부로 활용되었다는 점을 스토리텔링으로 엮었는데, 2014년 정부로부터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큰 홍보효과를 거두었습니다.


SBS 골목식당_대전청년구단편
또 저도수 트렌드를 선도했다는 점 역시 김 대표의 효과적인 전략으로 꼽히는데요.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도수를 기존 6도에서 5도로 낮춘 것에 대해 업계에서는 ‘부드러운 맛의 저도수를 선호하는 젊은 세대와 여성 고객을 위한 전략’이라고 해석하지만 사실이 아니다”면서 “지평의 특색을 살리고 균질한 맛을 내기 위한 연구과정에서 도수가 5도일 때 가장 ‘지평다운 맛’이 난다는 결과가 나와서 제품에 반영한 것뿐”이라고 해명했습니다.


SBS 골목식당_대전청년구단편
실제로 지평막걸리는 지난 2018년 예능 프로 ‘골목식당’에서 진행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시식단 사이 최다 득표와 찬사를 받으면서 맛에 대해 재조명 받기도 했습니다. 방송 후 시식단이 극찬한 해당 막걸리가 뭐냐는 질문이 쇄도하면서 전통주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골목식당 방송의 최대 수혜자는 지평생막걸리”라는 부러움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

KBS 1박2일 _양조장편
또 하나 업계에서 주목하는 지평먹걸리 재도약의 비결은 ‘상생’입니다. 일반적으로 식당에 가서 막걸리를 주문할 때 ‘OO막걸리’주세요 하기보다는 “막걸리 주세요”해서 주인이 주는 브랜드를 마시기 마련인데요. 그런 점에서 유통망 확대는 막걸리 업계의 주요한 수익창출원입니다.


2018년 준공한 춘천의 제2공장
앞서 2012년까지만 해도 서울에서조차 지평 막걸리를 만나기 어려웠다면 2017년부터 지평막걸리는 강원, 부산, 경남, 충청, 전북 등 전국 유통망 확대를 추진했습니다. 이때 지평주조는 “다른 막걸리업체에 비해 도매상이나 식당에 유통마진을 많이 준다”라고 소문이 났는데, 이에 대해 김 대표는 “가장 높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상생을 위해 노력한다”면서 “대형 주류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해외연수를 보내드린다든가 문화적인 부분에도 신경 쓰고 있다”라고 전했습니다.

카카오TV 머선129
김기환 대표가 입사한 2009년 연 매출 2억 내외에 불과했던 지평주조는 2012년 월 매출 1억 원을 달성했고 이후 꾸준히 30~40% 매출 증가를 기록했습니다. 2014년에는 20억, 2015년에는 40억, 2016년에는 60억, 2017년에는 100억, 2018년에는 160억, 2019년에는 230억, 2020년에는 308억을 달성했지요.

한편 혼술 트렌드, 여성과 젊은 층 공략, SNS 홍보 등 마케팅을 성장의 주요한 비결로 꼽는 이들을 향해 김 대표는 “마케팅 부서가 생긴 지 2년 정도 밖에 안되었다”라며 억울함을 토로합니다. 오히려 제조공법과 맛 등 기본기에 충실한 덕분이라는 설명인데요. 앞으로 막걸리와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또 한 번 침체기를 맞이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자신감 역시 기본기를 튼튼하게 해 놓은 덕분이라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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