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가 이 구두 사진 자주 올려도 싫지 않은 이유

이효리, 문재인 신어 유명해진 구두 ‘아지오’
시각장애인 대표와 청각장애인들이 만드는 구두

어린 시절부터 잘 보이지 않았다. 중학교에 입학할 때쯤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그에게 의사는 말했다. “이제 틀렸습니다.” 눈 말고는 모두 멀쩡한데 마치 시한부 선고를 내리는 듯한 말투였다.

장애보다 힘든 것은 주변인들의 동정어린 시선과 비난이었다. 동네사람들은 그를 보며 혀를 차기 일쑤였다. 담임 교사는 툭하면 “왜 하필 우리 반에 와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따졌다. 어머니는 보기만 해도 아픈 자식에 대한 슬픔을 주체할 수 없을 때마다 “제발 나가 죽으라”고 소리쳤다.

소년에게는 그래도 꿈이 있었다. 목소리가 좋고 말을 잘하니 아나운서하면 잘하겠다는 동네 아저씨의 말 한마디가 발단이었다. 하지만 결국 아나운서도 눈으로 원고를 보면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꿈을 접었다.

꿈도 직장도 없던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자포자기 심정으로 서울 영등포역에서 노숙 생활을 했다. 절망 속에 방황하기를 한참. 그는 우연히 라디오에 출연했고 CBS 방송리포터 자리를 얻었다. 장애인 분야를 취재하다 그들의 일자리 문제에 관심을 가진 그는 지금 수제화 회사 대표로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구두만드는풍경 유석영 대표/ jobsN
‘구두만드는풍경’ 유석영(59) 대표 이야기다. 구두만드는 풍경은 문재인 대통령, 가수 이효리가 신어 유명해진 수제화 브랜드 ‘아지오’를 운영하는 회사다. 2010년 파주시 장애인종합복지관 관장으로 일하던 유 대표가 문을 열었다.

장애인들이 기술도 배우며 일할 수 있는 일터를 만들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만들었다 재정난으로 2018년 문을 닫았다. 그러다 문재인 대통령이 몇 년째 신는 낡은 구두가 아지오 제품이라는 뉴스가 화제를 모으면서 이를 기반으로 2018년 다시 일어섰다. 현재 9명의 청각장애인, 1명의 지체장애인이 구두를 만들고 있다.

망할 때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지금도 넉넉한 형편은 아니다. 순수익도 얼마 되지 않는 회사가 운영을 포기하지 않는건 장애인들에게는 일자리가 곧 희망이자 자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유 대표와 구두만드는풍경의 최종 목표는 장애인 30명 고용이다.

협동조합 형태로 세워진 구두만드는풍경은 최근 배의 선장 역할을 맡는 이사장을 교체했다. 유 대표 홀로 짊어진 짐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을 수 있도록 하자는 한 조합원의 제안 때문이다. 유 대표 여기에 동의했다. 이사장에서 조합원으로 내려온 유 대표를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구두만드는풍경 사무실에서 만났다.

구두만드는풍경 사무실 입구./ jobsN

-최근 협동조합 이사장 자리를 내려놓았다고 한다.

“한 고비를 넘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도 조금 나빠졌다. 40년 가까이 알고지낸 정권 이사에게 이사장 자리를 넘겼다. 정권 이사장은 장애인이면서 장애인 복지에 오래 투신한 인물이다. 이사장 이외 회사 대표 자리는 아직 맡고 있다. 이 회사의 실질적인 운영·관리를 맡아줄 경영전문가를 찾는 중이기 때문이다.”

-어떤 전문경영인을 찾고 있나.

“우리가 바라는 전문경영인은 장애인 복지와 경영 두 부문에 관심과 경험이 많고, 둘 사이의 접점을 잘 찾아 조율할 수 있는 분이다. 장애인에 대해 잘 모르고 수익에만 몰두하면 설립 취지가 무너질 수 있다. 반대로 장애인 복지만 생각하면 회사가 위험해질 수 있지 않나. 두 지점에서 균형을 잘 잡을 수 있는 분을 빨리 찾고 싶다.”

아지오 구두./ 구두만드는풍경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애초에 공장을 하면 매출도 채용 인원도 더 늘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왜 수제화를 선택했나.

“손 때문이다. 청각장애인의 손은 귀하다. 감각이 좋다. 그 재능을 빌려와 쓴다는 표현이 옳겠다. 우리가 아니어도 이미 많은 사람이 기계로 구두를 만든다. 대규모 자금도 인력도 없는 상태에서 경쟁한다는 건 승산이 없어보였다. 청각장애인의 좋은 손과 솜씨를 심으면 편안한 신발로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했다.”

-처음 시작할 때 초보들을 썼다. 구두를 잘 만드는 청각장애인들을 찾기가 어려웠나.

“1980년대 국내 구두공장에는 청각장애인들이 많았다. 근데 90년대 구두시장이 무너지면서 많이 떠났다. 문을 열 당시에는 기술자보다는 정말 일을 하고 싶은 청각장애인들을 고용하는 것이 설립 취지에 더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청각장애인들 사이에 좋은 직장으로 소문이 났다. 엘리베이터에서 공장까지 10m 밖에 안 되는데 거길 직원들이 뛰어 다닌다. 빨리 일하고 싶고, 즐거워서 달린다고 하더라. 그런 걸 보면서 잘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경력이나 나이 보다는 얼마나 일을 하고 싶어하는지를 주로 본다. 우리 직원들 연령도 그래서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직원들과 함께한 유석영 구두만드는풍경 대표의 생일파티. 이 파티는 코로나 이전에 열렸다./ jobsN

-시각장애인 대표는 청각장애인들의 수어를 볼 수 없고, 청각장애인들은 대표의 말을 들을 수 없다. 소통은 어떻게 했나.

“수어통역사가 사무실에 항상 같이 있다. 물론 수어통역사가 있어도 직접 대화하는 것보다는 불편하다. 하지만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도 대화가 잘 안 통할 때가 있지 않나. 감수할 만한 불편이다. 또 수어통역사를 통하면 수어통역사가 증인이므로 서로 기억이 달라 다툴 일도 없다.”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구두만드는풍경 공장에서 직원들이 구두를 만들고 있다./ jobsN

-첫 창업 이후 10년이 지났다. 지금 시점에서 지난 10년을 돌아본다면.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처음부터 충분히 공부를 하고 준비를 해서 회사를 만들었더라면 폐업이라는 아픔을 겪지 않았을 것 같다. 중간에 한번 폐업해 의지 하나면 충분하다는 제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희망을 가지고 회사에 들어온 청각장애인들에게 큰 상처를 줬다. 회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꼭 말해주고 싶다. 철저하고 꼼꼼하게 준비하고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알고 시작하라고.”

-첫 창업에서 어떤 점이 부족했다고 보나. 재창업 때 특히 신경쓴 부분은 무엇인가.

“구두만드는풍경이 문을 닫은 궁극적인 이유는 우리가 품질 좋은 신발을 정직하게 만들기만 하면 많은 분이 사줄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었다. 근데 사업은 품질 뿐만 아니라 자금, 마케팅 등 전략적으로 생각해야 할 부분들이 많았다. 이런 부분들을 혼자 감당하기 어려웠다. 회사 운영에 여러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협동조합 방식으로 재창업한 이유다.”

왼쪽부터 고객의 발 모양을 그려놓고 치수를 메모한 종이, 발 모양을 그리고 치수를 재는 곳./ jobsN

-지난해 매출은 얼마인가. 회사 수익은 어떻게 쓰고 있나.

“수제화 특성상 대량 생산이 불가능하고, 대부분 고객의 발 사이즈를 재서 한 켤레씩 만들기 때문에 시간과 비용이 굉장히 많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가격을 또 너무 높이면 소비자가 우리 신발을 사주기 어렵지 않나. 원가율이 80~90%다. 1만원을 벌면 그 중에 8000~9000원이 원가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수익은 대부분 회사를 지탱하는데 들어간다. 빚도 갚고. 다행이 직원들 월급은 제때 주고 있다. 장애인 30명 고용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가야할 길이 멀지만 한 걸음씩 그래도 가고 있다. 조합원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니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매출은 8억원에 조금 못미치는 수준이었다.”

아지오 구두를 신은 가수 이효리./ 이효리 인스타그램

-작가 유시민, 가수 유희열과 이효리 등 많은 이들이 아지오를 돕고 있다. 특히 이효리는 아지오 신발을 신고 인터넷에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코로나로 한창 힘들던 지난해 갑자기 아지오 홈페이지에 접속할 수 없다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처음에는 왜 그런지 몰랐는데 인터넷 인기 검색어에 ‘아지오’가 뜬 것을 보고 검색해보다 이효리씨 때문이라는걸 알았다. 이효리씨가 우리 신발을 신은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렸던 것이다. 이때부터 이틀동안 아지오 홈페이지에 접속이 불가능했다. 1년에 5000켤레 정도를 판매하는데 덕분에 1000켤레가 넘는 구두 주문이 들어왔다.

이효리씨는 2018년에도 남편과 함께 우리 구두를 신은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려준 적이 있다. 당시 유희열씨가 우리 구두를 이효리씨에게 소개했고, 우리의 뜻과 취지에 공감한 이효리씨가 선뜻 모델로 나서줬었다. 정말 고마웠다.”

-최근 유 대표와 아지오의 이야기를 담은 책 ‘꿈꾸는 구둣방’을 펴냈다. 책을 쓴 계기는 무엇인가.

“우리가 걸어온 길을 되짚고, 앞으로 나아갈 미래에 대한 다짐을 소비자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어 쓴 책이다. 매월 회사 홈페이지에 아지오의 고객이나 직원들을 취재해 한 편씩 글을 올렸다. 30편쯤 모였을 때 책으로 묶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출판사에 제안했다. 출판사에서 이 내용과 아지오에 대한 이야기를 한 데 모아 내보자고 했다. 더 많은 분들에게 아지오의 이야기를 알리자고 했다. 힘들 때, 혹은 돈을 많이 벌어 우쭐해질 때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휘발성 없는 책으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남겨두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

“맨 처음 한 약속처럼 30명의 장애인이 웃으며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장애인이 만든 구두라는 걸 앞세우기 보다는 구두 잘 만드는 회사로 우뚝서고 싶다.”

CCBB가 추천하는 글

»우린 메스를 든 셜록 홈즈…직업만족도는 만점

»은퇴후 자식에 손 안벌려도 되는 자격증은?

»‘3일 연휴’ 올해 4번·내년 4번 더 생긴다…항공권 예약?

»엄마가 쓰던 이것, 지금 외국에서 난리라는데…

»15년간 망했던 그들이 수천억 대박 터트린 이유

img-jobsn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0
+1
0
+1
0
+1
0
+1
0

Leave a Comment

랭킹 뉴스

실시간 급상승 뉴스 베스트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