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는 사소한 순간에 시작된다는 인생 이야기 ‘리스본행 야간열차’

감독 빌 어거스트
출연 제레미 아이언스, 멜라니 로랑, 잭 휴스턴, 마르티나 게덱
장르 미스터리, 멜로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11분
네티즌 평점 8.34

영화는 고전문헌학을 가르치며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던 주인공이 우연히 빨간 코트를 입은 여자를 구하게 되고 그녀가 남기고 간 오래된 책 한 권과 리스본행 기차표에 이끌려 리스본으로 향한다. 리스본에서 오래된 책의 작가의 과거를 만나고 현재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꼭 요란한 사건만이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 순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운명이 결정되는 드라마틱한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할 수 있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는데 과거 이야기의 배경은 포르투갈 카네이션 혁명 (리스본의 봄)이 있기 전 40년 이상 이어진 독재 정권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들의 이야기였다. 카네이션 혁명은 독재와 계속되는 식민지와의 전쟁에 대한 반발감으로 좌파 청년 장교들이 주도하여 발생한 무혈 혁명이었다. 혁명의 성공을 안 시민들은 리스본 거리에 나와 카네이션 꽃다발을 군인들에게 주었으며 혁명군 병사들은 총구에 카네이션을 꽂음으로써 화답하였다. 카네이션은 우리나라에 효도의 꽃이지만 혁명의 꽃이었다.

영화는 어떤 변화도 없는 삶을 살던 남자가 오래된 책 한 권을 만나고 그 작가의 인생을 알게 되면서 변화하는 이야기다. 과거 인물을 통해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어떻게 사는 게 진짜 사는 것인지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누군가는 죽었지만 그의 과거는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메시지까지 감동적인 힐링 영화였다.​

★평론가 평점(10점 만점 기준)

백은하 ‘우연’이 등을 떠민 ‘필연’의 여행(7.25)
나원정 미드나잇 인 리스본(7)
김태훈 수없이 스쳐 지나가는, 삶을 바꿀 수 있는 그 어느 한순간(5)
박평식 의식을 추리하긴 쉽지 않아(5)
송형국 망각할 자유와 죄책감에 관한 현재진행형 텍스트(6)


매일 똑같은 지루한 일상을 보내는 그레고리우스 교수는 혼자 체스를 두고 그 다음날도 변함없이 학교로 출근하는데 다리 위에 위태롭게 서있는 빨간 코트 여자를 구해주게 된다.

사연이 있어 보이는 빨간 코트 아가씨

아가씨는 빨간 코트만 남기고 사라졌고 코트 안에는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과 리스본행 기차표가 있었다. 매일 똑같은 삶을 반복하던 그레고리우스는 강한 끌림에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는다. 이런 일은 그에게 처음이었다.

‘언어의 연금술사’ 책을 읽고 매료된 주인공은 리스본에 가서 작가 아마데우를 직접 만나고 싶어 주소를 알아내 찾아가지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영화는 그의 과거를 찾아가며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보여준다.

사고로 안경이 부서진 그레고리우스는 안과에 가서 안경을 새로 맞추게 되는데 의사는 책에 대해 알고 있었고 작가와 삼촌이 아는 사이였다.

마리아나와 인연도 생기다

작가 아마데우는 포르투갈 독재 정권이던 살리자르집권때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었다. 그 시대는 친구도 가족도 믿을 수 없는 신뢰 없는 삶의 시대였다.

아마데우

아마데우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였던 조지가 있었다. 아마데우는 귀족 출신이고 조지는 노동자 출신으로 신분은 달랐지만 둘 다 호기심이 남다르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 당시 금서였던 사르트르, 마르크스 책을 몰래 읽으며 생각을 나누었고 독재 정권에 불만을 품었다. 둘은 죄책감이나 고통을 공유하며 우정을 쌓았다.

독립적인 사고를 멸시하고 멋진 경험들을 죄라고 치부하는 세상. 우리의 사랑을 독재자와 암살자에게 베풀라고 하는 세상.
살기 싫은 세상이었다.

조지 약국

아마데우는 의사가 되고 조지는 약사가 되었다. 아마데우는 조지에게 약국을 선물로 줄 만큼 둘 사이 우정은 영원할 것 같았고 단단했다.

아마데우는 어느 날 사람들에게 맞아 죽어가던 리스본의 도살자 비밀경찰 멘데즈를 의사의 소명으로 살려냈고 이후 반역자 소리를 듣게 된다. 왜 살렸냐는 원망을 듣자 죄책감 때문인지 조지가 활동하는 레지스탕스에 합류하게 된다.

조지의 애인 스테파니아

그곳에서 아마데우는 운명의 그녀 스테파니아를 만나게 된다. 스테파니아는 아마데우를 처음 만났을 때 만물에 새빛이 비치는 느낌이었고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마데우는 친구의 연인이었던 그녀를 밀어냈지만 끌리는 마음은 어찌할 수 없었다.

운명처럼 끌리는 두사람

모든 걸 기억하는 여자였던 스테파니아는 레지스탕스를 돕는 군인 이름과 주소를 전부 외웠기에 꼭 필요했지만 동시에 잡히게 되면 모든 게 발설되면 더 위험했다.

조지가 위험한 스테파니아를 없애고 싶어 한다는 말을 듣고 아마데우는 스테파니아와 함께 떠나기로 한다. 아마데우는 안정적인 모든 걸 버리고 여자 때문에 모험을 떠나게 된다.

​사랑에 푹 빠진 적 있나?
배도 안 고프고 말도 필요 없고.

​아마데우는 책을 쓰고 스테파니아와 모든 걸 공유하고 싶어 했으나 스테파니아는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했던 것인지 자신이 없어서인지 그를 떠났다.

​그는 나를 갈망했고 인생을 열망했죠.​
이후 아마데우는 카네이션 혁명이 발생한 날 동맥류로 사망했다.

우린 우리의 일부를 남기고 떠난다.

그저 공간을 떠날 뿐 떠나더라도 우린 그곳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야만 찾을 수 있는 것들이 우리 안에 남는다. 우리가 지나온 생의 특별한 장소로 갈 때 우리 자신을 향한 여행도 시작된다. 그 여정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다.​

​아마데우와 스테파니아 인생에는 활력과 강렬함이 가득한 충만한 삶이었다. 주인공은 아마데우 과거의 삶을 들여다보며 지루하게만 살아온 자신의 인생은 뭐였을까 생각한다. 리스본에 있던 지난 며칠이 가장 강렬했을 정도였으니. 그렇게 단 며칠이 가장 가슴 뛰는 순간이었음에도 다시 돌아가려고 하는 주인공을 붙잡는 마리아나.

​여기 머무르는 건 어때요?


그의 삶이 너무 특별해서 제 인생이 무의미하게 느껴져요.

​주인공은 혁명이 없던 스위스처럼 상황을 모면하며 살아왔고 아마데우의 삶을 보며 아무런 변화 없이 살아온 무미건조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럼에도 어떻게 살아야할지 명확하게 몰랐던 주인공은 마리아나가 붙잡아주길 바란 것 같다.

​아마데우는 표현의 억압에 대항하고 독재자의 가치 없는 구호에 반기를 들어야 한다고 독재에 맞서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고, 죽음이야말로 매 순간을 아름답게 하고 죽음을 통해서만이 삶의 의미를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죽음을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답이 나온다.

​젊은 시절엔 삶이 영원하다고 여긴다. 죽음이 우리 주위를 날아다니며 얼굴을 스치는 하늘하늘한 리본처럼 닿을 듯 말 듯 가까이 존재하는데도 변화는 언제 찾아올 것인가? ​

​한편 주인공을 리스본으로 이끈 빨간 코트 아가씨가 방황했던 이유는 우연히 아마데우가 쓴 ‘언어의 연금술사’ 책을 읽었고 사랑했던 할아버지가 리스본의 도살자 멘데즈라는 걸 알게 되어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의 만행 때문에 자학하는 빨간 코트 아가씨는 과거의 만행에 대한 죄책감이고 죄의식을 의미했다.

​과거는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삶의 의미를 선물하지만 죄의식을 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깃털처럼 자유로우며 불확실함으로 버거워하던 때, 인생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이다.​

​한 편의 문학작품을 보는 것 같은 힐링 영화였고 여행이 떠나고 싶어지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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