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사립미술관은 누가 만들었을까?

“미 퀴즈~?” “Yes” 사소하고 아기자기한, 그래서 어디 가서 물어보긴 좀 그렇지만 알아두면 쓸모 있는 미술의 궁금증을 다룹니다.

오늘의 질문
“제 취미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다니는 것인데요. 이곳저곳 방문하다가 보면 문득 이 일을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은 누구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곤 합니다. 특히 국공립이 아니라 사립 미술관이면 더욱 궁금합니다. 혼자서 이 많은 작품들을 모으고 관리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최초의 사립 미술관을 만든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서 그런 엄청난 결정을 할 수 있었던 걸까요? 미퀴즈에서 알려주세요!”

한국 최초의 사립 미술관

미술관을 거닐다 보면, 그런 궁금증이 생길 때가 있죠. 대체 이렇게 넓은 공간을 누가 다 관리할까 혹은 누가 이렇게 많은 것들을 모았을까. 하는 질문이요. 오늘의 질문자님은 그중에서도 ‘사립 미술관’에 대한 궁금증이 크신 것 같은데요. 답부터 드리자면, 한국 최초의 사립 미술관은 아마 여기 계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계시는 이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간송 미술관’입니다. 간송 미술관은 이미 우리에게 국보 이슈로 익숙한 이름이죠? 아마 국보 이슈를 보시면서 간송에는 어떻게 국보를 소장하게 됐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신 분들도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의 그런 궁금증까지 한 번에 깔끔하게 해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간송은 무슨 뜻일까?

간송 미술관 할 때 ‘간송’은 무슨 뜻일까요? 간송은 전형필이라는 사람의 ‘호’인데요. 그러니까 미술관 앞에 붙은 말은 누군가 한 사람의 이름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누구 미술관’ 이런 식인 것이죠. 그렇다면 그 사람이 누구길래 미술관 앞에 이름을 붙였을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이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을 모은 사람의 이름이랍니다. 유명한 교육자이자 문화재 수집가죠.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그는, 당시 일본으로 유출되는 여러 가지 유물들을 사들이며 한국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 중 하나인데요. 증조부 때부터 종로 일대에 상권을 장악한 부호의 상속자였는데요. 거의 전 재산을 문화재를 사들이는데 큰 힘을 부었습니다.

그 덕분에 전형필에게는 극적인 문화재 수집담이 많이 전해집니다. 일본인에게 기와집 20채 가격을 지불하고 구매한 국보 ‘청운상감운학문매병’이라던가, 1940년대 일본보다 훈민정음을 먼저 발견하고 수집한 것이던가 하는 드라마틱한 것이죠. 그리고 한국전쟁 때는 유물들을 가지고 피란했던 일화도 꽤 유명한 일화입니다. 그만큼 전형필이 문화재에 진심이었다는 것이죠.

서울 한복판에 문을 연 보화각

(출처=간송미술문화재단 인스타그램)
간송 미술관의 전신은 1938년 서울에 문을 연 ‘보화각’입니다. 빛나는 보배를 많이 모아둔 집이라는 뜻이죠. 이때부터 전형필은 체계적으로 문화재를 관리하고 기록하며 여러 연구자들을 불러 연구를 이어가는데요. 하지만 전시체제가 더욱 위중해지고 일본의 감시와 탄압이 심해지면서 미술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데요. 이후 전쟁 등 다양한 상황을 겪으면서 혼란을 겪던 중 1962년 갑작스럽게 전형필이 서거하게 됩니다.

그러자 유족들은 갑작스러운 공백으로 보화각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되죠. 집안에서 하고 있던 사업들이 정말 다양하고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 속에서 장남이 귀국하면서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간송의 지인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정리와 연구를 거듭하고, 드디어 ‘간송 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1971년부터, 유물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기 시작했죠.

긴 역사만큼이나 우여곡절이 많았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미술관 간송 미술관. 최근에는 다양한 이슈로 뉴스에게 만나볼 수 있는 미술관이기도 했는데요. 일제강점기, 어둠 속에서도 문화를 빛으로 여기고 지켜가려고 노력했던 전형필의 노력이 반짝반짝 빛을 내길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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