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 병자호란 척화파 김상헌 VS 주화파 최명길 신념 논쟁 영화 <남한산성>정보. 평점. 줄거리. 결말

감독 황동혁
출연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 박희순
장르 드라마
등급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139분
네티즌 평점 8.17

역사소설의 대가이자 간결한 문체로 사랑받는 김훈 작가님 <남한산성>을 바탕으로 한 영화.

​영화 <남한산성>의 배경은 1636년 병자년 12월에 일어난 병자호란 때, 인조는 강화도 피난길이 막히자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했다.

​인조는 친명배금 정책으로 명과 관계를 유지하고 청을 오랑캐의 나라라고 배척했다. 이에 청이 조선에 신하의 나라가 될 것을 요구했고 조선이 응하지 않자 청이 12만 병력을 이끌고 조선을 침입한 전쟁이 병자호란이다.

나라는 위기에 빠졌고 신념이 다른 두 신하는 서로 다른 뜻을 보인다. 백성을 위하는 실리 입장에서 청나라와 화친하자는 주화파 최명길과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며 청나라와 끝까지 싸우자고 주장한 김상헌.

​사람마다 소중히 하는 가치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신념이 생겼다.

​김상헌은 굳센 절의와 강한 신념으로 어차피 사람은 죽으니 의리를 지키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고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청나라와 화친을 주장했던 최명길이었다.

★평론가 평점(10점 만점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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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14년 청의 대군이 조선을 침략했다.

인조는 강화도 피난길이 막히자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한다.

​나라의 위기 앞에 신념이 다른 두 신하는 서로 예를 갖추며 대립한다.

김상헌(김윤석)/최명길(이병헌)

청은 세자를 볼모로 보내라 하고 최명길은 세자 저하를 보내지 않으시면 저들이 더 큰 요구를 해올까 두렵다 말하고 반대의 생각을 가진 김상헌은 지금 세자 저하를 보내면 오랑캐들이 업신여겨 오히려 더 큰 요구를 해 올 것이라 말한다.

​최명길 말보다 김상헌의 말에 힘이 실리고 전쟁을 막고자 청의 장수를 만나러 가는 최명길.

청의 신하는 다른 길은 없다고 세자를 무조건 데려오라고 선을 긋고 칸이 오고 있으니 서두르라고 일갈한다.

청의 황제 칸이 오고 있다는 소식에 최명길과 김상헌은 다시 논쟁을 한다.
지금은 싸워야 할 때가 아니라는 최명길.

칸이 오고 있다면 근왕병을 빨리 불러서 칸이 오기 전에 적들을 물리쳐야 한다는 김상헌.

​또 최명길 말은 묵살되고 인조는 근왕병 부르는 격서 보내고 청군과 전투를 시작한다. 막강한 무기와 군사력을 가진 청나라를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퇴각한다.

낡은 무기를 재정비해서 다시 싸운 전투에서 이시백(박희순) 장군의 활약으로 승리하고 이길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지만 남한산성에 고립되어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식량이 바닥나고 있었다.

설상가상 삼전도에 칸의 부대가 몰려오고 조선군은 희망이 없어 보인다. 결국 청나라는 전투태세를 갖추고 쳐들어오고 칸은 성문을 열고 천천히 걸어 나오라고 최후통첩을 보내온다.

마지막 논쟁을 하는 최명길과 김상헌.

최명길은 죽으면 소용없다고 강조하며 우선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치욕은 견딜 수 있으나 죽음은 견딜 수 없다는 입장.

​저들이 말하는 대의와 명분은 대체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먼저 삶이 있는 후에야 비로소 대의와 명분도 있는 것 아니 옵니까. 최명길​

​김상헌은 칸 앞에 엎드리는 것은 삶을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차라리 죽겠다는 입장이다.

​한나라의 군왕이 오랑캐에 맞서 떳떳한 죽음을 맞을지언정 어찌 만백성이 보는 앞에서 치욕스러운 삶을 구걸하려 하시옵니까. 김상헌 ​

무엇이 임금이옵니까. 오랑캐의 발밑을 기어서라도 제 나라 백성이 살아서 걸어갈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자만이 비로소 신하와 백성이 마음으로 따를 수 있는 임금이옵니다. 최명길​

​인조는 살고자 한다며 최명길 말에 따라 항복의 뜻이 담긴 답서를 보내게 된다.

​척화를 하자니 칸의 손에 죽을까 두렵고 오랑캐에게 살려달라는 답서를 쓰자니 만고의 역적이 될까 그것이 두려운 것이냐.​

​청의 공격에 백성들은 죽고 남한산성은 장악되었다. 항복한 조선의 왕은 임금의 옷을 벗고 신하의 남색 옷으로 갈아입고 대청제국 황제 폐하께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굴욕의 삼배구고두례를 행한다.

​47일 만에 남한산성에서 나와 삼전도에서 칸 앞에서 무릎 꿇은 인조를 본 최명길은 눈물 흘리고 김상헌은 자결한다.

​이미 수많은 백성을 잃은 후였고 인조는 굴욕적으로 왕의 자리를 보전하였다.


실제 역사에서 김상헌은 자결하지 않았다. 최명길도 청에 좋은 대접은 못 받은 듯 두 사람은 선양의 감옥에서 만나게 되고 고된 감옥 생활에서 시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우정을 나누었다고 한다. 오랑캐와 화친을 두고 뜻이 달랐던 두 사람이지만 서로에게 예를 갖추는 모습은 선비다웠고 아름다웠다.

병자호란 결과는 인조는 1637년 1월 30일 삼전도로 나아가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했다. 조선은 항복의 조건으로 명나라와 관계를 끊고 청나라를 섬기겠다는 조약을 맺었다. 조약에는 조선의 왕자들을 인질로 보낼 것, 청나라에 해마다 예물을 바칠 것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그 결과 많은 신하들과 왕자들이 인질로 잡혀가게 되었다. 대청 황제 공덕을 기리는 굴욕의 삼전도비가 세워지고 그렇게 흑역사가 되었다. 인조는 명이 기울고 청이 올라오고 있었는데도 지나친 사대주의에 빠져 국제 정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실력 없이 명분과 체면을 중요시했고 그 결과 백성들이 고통받았다.

최명길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두 신하의 생각이 달랐을 뿐 나라 사랑하는 마음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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