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친의 여친이 제게 키스했어요…저 어떡하죠?

조영주의 <로맨스 덕질>
와타야 리사의 ‘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
#내가 양성애자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여름, 한 커플이 여행을 간다. 우연히 다른 친구 커플을 만난다. 노랫말 가사처럼 친구의 친구를 사랑하게 되어 두 커플이 깨지고 한 커플이 탄생하는 일이 일어난다……엔간한 로맨스 장르에서는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이른바 클리셰죠. 오늘 소개할 와타야 리사의 소설 『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는 그런 빤한 이야기입니다. 단, 이 커플이 ‘남여’였다가 ‘여여’가 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요.

이 여자, ‘아이’는 남자친구와 함께 여름 휴가를 떠납니다. 아이의 남자친구는 아이가 고등학생 시절 짝사랑했던 상대로, 동창회에서 우연히 만났다가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한 사이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남자친구와 함께 떠난 곳에서, 아이는 남자친구의 소꿉친구 커플을 만납니다.

남자친구의 소꿉친구는 대하기 쉽지만, 그의 여친 ‘사이카’는 다릅니다. 사이카는 지나가는 사람도 숨이 멎을 듯한 미모의 배우입니다. 자신이 잘난 걸 너무나 잘 안다는 듯, 아이에게 거리를 두고 틱틱거립니다. 자꾸 짜증을 냅니다. 아이는 사이카가 자신이 유명하다고 생각해서 저러는가 보다, 하고는 불쾌감을 느낍니다.

그런 아이와 사이카는 갑작스레 내린 폭우로 고립됩니다. 천둥번개가 칩니다. “좀 심하네” 정도의 반응을 보이는 아이와 달리 사이카는 공포에 질립니다. 누가 벼락에 맞아 죽기라도 했나 싶은 의아함을 보이는 아이에게 사이카는 말합니다. “사실, 할아버지가 벼락을 맞아 돌아가셔서” 이 말에 아이는 어이가 없으면서도 그러면 무서울 만도 하다 싶어 사이카를 잘 달래줍니다.

사이카는 아이가 자신을 달래준 게 어지간히 감사했나 봅니다. 이후 언제 그랬냐는 듯 벽이 사르르 사라져서는, 아이를 친근하게 대합니다. 아이 역시 그런 사이카가 귀엽습니다. 알고 보니 사이카는 아이 외에 동성친구가 없답니다. 즉, 아이는 사이카의 유일무이한 동성 절친입니다. 이 사실은 아이를 우쭐하게 만듭니다. 연예인 사이카, 어딜 가도 주목받는 사이카, 그런 사이카의 모든 것을 공유하는 절친이 될 수 있다니!

그러던 어느 날, 아이는 사이카 커플의 결별 소식을 듣습니다. 아이의 남자친구는 말합니다. 사이카가 다른 상대가 생겨 남자친구를 찼다. 이 소식에 아이는 불쾌감을 느낍니다. 매일 연락을 주고 받고 만나는데 그런 이야기를 전혀 듣지 못했거든요.

아이는 일단 사이카를 만나보기로 합니다. 불쾌감보다 사이카를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거든요. 아이는 남자친구와 구체적으로 결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당연히 결혼식에는 사이카 커플이 와주길 바랍니다. 이 상황에서 사이카 커플이 깨진다면, 아이 혼자만 행복해질 게 괴롭습니다.

그렇게 사이카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한 아이. 아이는 파혼을 결심합니다. 물론 남자친구는 난리가 납니다. 게다가 아이가 자신과 헤어지려는 이유가 다른 남자도 아닌 여자란 사실, 그 여자가 하필이면 사이카란 사실에 기가 차서 웃습니다. 오히려 의심합니다. 사이카와 둘이 짜고 자신과 헤어질 핑계를 만든 걸 아니냐고 따집니다. 이런 남자친구‘들’을 위해 결국 아이와 사이카는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사자대면’ 자리를 만듭니다. 최악의 ‘사자대면’을 겪고 나서야 아이와 사이카는 커플이 됩니다.

여기까지가, 『처음부터 내내 사랑했어』의 초반부 내용입니다. 이것만으로 엔간한 소설 한 권 분량 아냐? 라는 기분이 들 정도로 전개가 치밀하고 숨 막힙니다. 저는 사실 GL류는 거의 접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엔 “으음 취향에 안 맞아서 포기하는 거 아닐까” 싶었는데요, 취향을 생각할 틈도 없이 푹 빠져들어 단숨에 읽어치우고 말았습니다.

특히 제가 감명깊었던 부분은 후반부의 전개였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사귄 아이와 사이카는 ‘어떤 이유’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릅니다. 대부분의 소설은 헤어지거나 그런 위기를 이겨낸 해피엔딩으로 피날레를 장식합니다. 에필로그로 “그로부터 십년 후” 같은 형식으로 두 여자의 재회를 다룹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다릅니다. 작가는 시간이 두 여자의 헤어짐을, 그리워하는 일상을, 다시 만나 인연을 이어가는 과정을, 너무나 리얼리티 넘치게 결코 포기하지 않고 그립니다.

작가는 이 책의 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도 끝없이 차오르는 사랑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 오래 만나지 못해도, 마음의 결이 달라져도, 상대의 감정이 어떻든 아무래도 계속되는 그런 관계에 대해서요.”

이 책을 모두 읽고 나니 이 말이 무척이나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와타야 리사는 17세에 데뷔한 천재 작가입니다. 이후 19살에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 『불쌍하구나?』로 오에 겐자부로상을 수상합니다. 둘 다 역대 최연소 수상 기록입니다.

작가는 이 책 『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로 또 한 번 문학상을 수상합니다. 이번엔 제 26회 시마세 연애문학상입니다. 이 상의 심사위원인 무라야마 유카는 심사평을 통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와타야 리사는 더 이상 ‘어린 천재 작가’가 아니다.”

저 역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어린 천재’란 수식어를 붙이는 건 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말이에요. 와타야 리사는 천재가 아닌, 이미 자신의 이름 자체가 성숙한 작가가 되었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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